청년층 고(高)실업이라는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지면서 취업문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특히 대학 졸업생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은 바늘구멍이다. 사상 최악이라던 지난해 가을 대기업 취업 평균경쟁률은 70 대 1 수준. 취업 전문가들은 지난해보다 경기가 훨씬 더 나빠진 올해는 평균 120 대 1로 껑충 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학은 취업전쟁터〓10일 오전 서울 연세대 중앙도서관. 시험철도 아닌데 빈자리 하나 없이 빽빽했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책은 대부분 취업 관련 경영학 서적이나 고시 준비를 위한 법률서적.

이 학교 사회학과 4학년생인 전현무씨(27)는 “경제가 안 좋다는 말이 나오면서 같은 과 친구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번져가고 있다”며 “도서관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라도 놓인다”고 털어놓았다.

요즘은 ‘졸업이 곧 실업’이다.

지난해 초 서울시내 모 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신현수씨(25)는 이제까지 원서를 넣은 곳이 150군데가 넘는다. 이 가운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 곳은 30여곳이었지만 경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번번이 돌아서야 했다. 할 수 없이 올해 초 방송 관련 전문학원에 ‘재입학’했다. 신씨는 “여학생은 졸업 즉시 취업하는 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한두 학기씩 졸업을 늦추거나 학원에 다니면서 다시 기회를 엿보는 ‘캥거루족(族)’이 주변에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서울 K대 상대의 지난해 졸업생은 110명. 일자리를 찾기 시작한 지 넉 달이 다 돼 가는데 일자리를 얻은 졸업생은 60명 정도에 그쳤다. 나머지는 적성을 따질 것도 없이 눈높이를 낮춰 일자리를 구해야 할 처지다.

취업난이 심해질수록 인터넷에는 보다 많은 채용정보를 얻으려는 청년실업자로 넘쳐난다. 취업정보업체 인크루트(www.incruit.com) 사이트에 올라 있는 취업희망자들의 온라인 이력서는 이미 100만장을 돌파했다.

▽대기업 취업은 ‘바늘구멍’〓대기업인 LG전선은 올 1월 말 신입사원 40명을 모집했다. 이 가운데 대졸 신입사원은 고작 20명. 그런데 지원자는 1500여명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옛날처럼 대학을 찾아다니면서 기업설명회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며 “대학 몇 군데만 의뢰해도 지원서가 수천장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지난해 104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던 외국계 보험회사 푸르덴셜생명은 올해 채용인원을 크게 줄였다. 1·4분기(1∼3월) 31명을 채용한 뒤 7월과 10월 각각 20명가량을 더 뽑을 예정이어서 연간 채용인원은 70명 안팎에 머물 전망이다. 푸르덴셜생명 김정은 인사팀장은 “올해는 평년 수준인데 회사 안에서 채용 시기나 규모를 좀더 ‘보수적’으로 조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해 12월 신입 및 경력사원 700명을 선발했다. 지원자 2만5752명 중 박사가 104명, 석사가 3167명이나 됐다. 미국 경영학석사(MBA)학위 소지자 등 해외유학파도 413명이나 지원했다. 현대차 인사팀 관계자는 “요즘 지원자들은 토익 900점은 기본이고 회사의 눈길을 끌 만한 다른 능력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취업경쟁이 치열해졌다는 뜻이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기업의 활력’〓일자리가 불안정한 청년실업은 폭력, 한탕주의, 신용불량자 양산 등 사회문제로 직결된다. 하지만 청년실업의 부작용은 경제분야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청년실업이 높다는 것은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인적 자본을 효율적으로 ‘양성’하지도 ‘활용’하지도 못한다는 뜻.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부(富)와 고용창출의 핵심주역인 기업들의 기(氣)를 살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상우 연구원은 “경제가 계속 성장해야 전체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 가운데 청년층 신규 고용도 창출된다”며 “기업이 적극 투자에 나설 수 있게 정부가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하고 기업활동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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