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이 노조활동에 가한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부터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해 보겠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최근 몇 년새 급증한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가 민간기업뿐 아니라 정부 기관 또는 공기업에서도 심각한 수준 아니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권 장관은 또 산별교섭 문제와 관련, "현재의 기업별 교섭체계만이 유일해야 한다고 매달려서는 안된다"며 "산별교섭에 반드시 사용자가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도 (산별교섭 요청시) 어렵더라도 대각선교섭에는 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한 지 한달을 넘긴 권 장관을 지난 3일 오후 과천청사에서 만나 두산중 사태 중재과정에서 느낀 점은 물론, 향후 노동정책 추진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취임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 동안 두산중공업 사태 등 굵직한 일도 있었다. 지난 한 달을 평가한다면.
"어려움은 생각보다 덜했다. 다만 (노동분야가) 워낙 중요한 영역이고 지금은 노동분야에서 제반 여건이 어떻게 가닥이 잡히느냐에 따라 향후 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적 발전까지 모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중압감과 책임감이 크다. 뒷골이 무겁다.(웃음)"

- 노 대통령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정립'에 관한 계획수립을 지시했다고 하는데 무슨 내용인가. 또 현 정부는 "대기업 노조의 책임"을 자주 언급했는데, 이와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 정립'과의 관계는.
"제2의 사회협약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대통령도 갖고 계신 것으로 안다. 그렇기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 사전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노사정 모두 도덕적 정당성과 권위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조다. 이제 노동운동은 공동이익,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예컨대 노동자 내부의 이원화 현상은 대기업노조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때문인데 장기적으로 좀더 성숙해야 하며 중소영세·비정규노동자 등 어려운 동료를 싸안을 수 있는 노동운동이 돼야 한다."

- 그렇다면 정부가 '제2의 사회협약'을 추진하겠다는 의미인가.
"그건 아니다. 사회협약은 추진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노사정이 좀더 도덕적 권위와 성숙된 노사문화를 확보할 수 있다면 새로운 제2차 사회협약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 성숙된 노사관계란 무엇을 의미하나. 이는 과거 정부의 '신노사문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노사관계의 의식·관행 개선을 위한 노력은 부단히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제도는 그대로 두고 의식·관행만 바꾸자고 하면 노사 양쪽으로부터 불신을 얻을 수밖에 없다. 제도개선을 하면서 의식·관행 개선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신노사문화 운동 자체는 의미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신노사문화 운동만으로 노사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 지난 두산중 타결 과정에서 노동부 중재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향후 노사분규나 현안에 대한 정부 개입의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에서 구체적인 기준 마련은 어렵다. 중대한 노사문제에 정부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노동행정의 최고 책임자가 무박3일간 내려가서 합의를 도출하는 일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직접적 개입은 가능한 한 줄이겠다. 다만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문제에 대해 정부가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게 꼭 자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 두산중 사태도 산별교섭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됐다. 현재 노동계는 산별교섭 실현을 위해 산별교섭 요청시 사용자가 거부하지 못하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현재의 기업별 교섭체계만이 유일해야 한다고 매달려서는 안된다. 업종별 집단교섭, 산별교섭 등 특정유형의 교섭체계가 고착되지 않는 중층적 교섭체계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산별교섭을 하고자 하는데 걸림돌이 있다면 치워주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산별교섭에 반드시 사용자가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사용자도 (산별교섭 요청시) 어렵더라도 대각선교섭에는 응해야 할 것이다."

- 두산중 사태로 사용자의 손배·가압류 남용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정부는 이의 남용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인데, 다른 한편으로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의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 규모도 만만치 않다. 정부부터 먼저 이를 해제할 의향은 없는지.
"공공부문부터 먼저 하면 좋으련만…. 하지만 현행법상 법리상 하자가 없는 행위를 사용자가 한 것이기에, 지나친 남용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할 수는 있지만 권리를 포기하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있을 테니 협의 대상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게 있는 줄만 알았지 정확한 원인, 규모 등은 잘 모른다. 상황을 파악해봐야 할 것이다. (정부의 손배·가압류 해제와 관련해) 필요하다면 상황 파악 후 진지하게 검토해 보겠다."

- 4월로 접어들었는데도 아직 주5일제 재협상을 위한 노사간 만남이 없다. 재협상 전망을 어떻게 보나.
"시간문제다. 주5일제가 장기적으로 실패할 수는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노동시간 단축사(史)다. 어떤 사회에도 갈등은 있어왔다. 제반 여건을 볼 때 가급적 빨랐으면 한다. 그러나 기대보다 늦어진다면 노동현장에서 실질적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대책을 추진할 것이다."

-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 보장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했지만,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등은 노동관계법 상 노동자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특수고용관계 종사자 단결권 보장문제는 법에 의해 일률적으로 구하기 어렵고, 아직 '특별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노사정위에 특위를 설치해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을 재설정할 수 있는지, 아니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보호방안을 강구해야 할지 좀더 논의해야 할 것이다."

- 이라크 침공, 북핵 위기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하향곡선을 긋고 있다. 성장률 5% 이상을 전제로 한 정부의 연간 50만명 일자리 창출 계획, 실업대책 등의 수정이 필요하지 않은지.
"현재 대규모 실업 발생에 대한 대책이 필요 없길 바란다. 고용사정이 안 좋아질 것이라고 해서 특단의 대책은 아직 필요 없다고 본다. 계획 수정은 없다. 약간의 경기 변동에 대해 정책기조를 바꿔야 할 정도는 아니다."

- 정부는 최근 인천에 이어 부산, 광양에도 경제자유구역(경제특구)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계가 요구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에 대한 견해는.
"이미 법이 통과돼 오는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법을 바꾸자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차적으로 우선 운영을 해보고, 시행과정에서 신중한 운용을 위해 노동부에서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겠다."

-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3일 만기 출소했다. 새 정부의 새로운 노-정 관계확립을 위해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가 핵심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를 위한 정부의 복안은.
"민주노총의 대승적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는 민주노총의 그러한 결단을 기대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논의의제 범위 확대, 업종별 협의회 활성화, 의결사항 이행력 제고 등 노사정위 발전방안을 마련하면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 여건 조성에 힘쓰겠다."

- 대통령은 지난 업무보고에서 "노동부 공무원도 과거의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부처 중에서 근로자의 입장을 적극 반영해야 하는 노동부가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노동부 위상을 강화하고 노동부 공무원의 자질을 높이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선 조직 및 인력보강이 필수적이며 근로감독관에 대한 특별훈련 등을 통해 자질 향상에 나서겠다."

연윤정 기자(yon@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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