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계열분리가 다시 기로에 섰다. 현대가 애초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지분을 채권단에 매각하고 연말까지 제3자에게 다시 팔기로 했던 합의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현대는 쟈딘플레밍 등 미국계 투자증권회사의 지분 매입 제안을 받았다며 매수자 명단을 금명간 공정거래위원회와 채권단에 제출하겠다고 21일 밝혔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2000억원이 넘는 거래 상대방을 하루아침에 찾았다는 현대쪽 발표에 의문을 표시했다.

현대가 차 지분 매각방식을 바꾼 것은 일부 채권은행들이 정 전 명예회장의 매각의사를 문서로 확인해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채권은행의 변호사들은 정 전 명예회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나중에 상속권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문서확인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직접 매수자를 찾겠다고 버텼으며, 외환은행은 매수자가 계열분리 요건에 부합하고 현대와 실질적인 관계가 없다면 수용한다는 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채권은행 임원은 “매매계약을 할 때 자유의사로 파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는 당연하다”며, “현대가 이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팔 생각이 없는 것 아닌지 의심케 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21일 “현대가 명단을 제출한다 해도 이를 검증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해, 현대차 계열분리가 이른 시일 안에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임을 내비쳤다. 이럴 경우 계열분리를 포함한 현대경영정상화 계획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현대쪽 주장=현대는 애초 채권단 위임에서 직접매각으로 바꾼 데 대해“방법만 다를 뿐 의미는 자구계획 발표 당시와 같다”며 “한점 의혹없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현대는 우선 매각방식 변경 이유를 `채권단의 이해 관계에 따른 지연'으로 돌리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여러 은행들이 공동으로 지분 매각에 나설 경우 매매조건과 차액보전 방식을 맞추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 전 명예회장 지분이 현대의 우호세력에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전 합의를 본 공정위와 채권단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매각 관련 서류를 정부와 채권단에 제출해 의혹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 정부·채권단쪽 태도=공정위는 누구에게 팔지는 현대가 알아서 할 일이며, 다만 계열분리 신청 때 매입 주체가 현대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현대쪽에서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대차 계열분리 신청 때 매수자가 현대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서류를 같이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현대입증 내용을 본 뒤 필요하면 매수자와 현대와의 관련성과 이면계약 존재 여부 등을 조사해 계열분리 승인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대쪽이 매입처와 이면계약을 해 나중에 지분을 되살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만약 이면계약 등을 통해 나중에 지분을 되살 경우 계열분리 요건에 어긋나게 되므로 계열분리가 취소된다”고 말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이연수 부행장은 “계열분리 요건에 확실히 맞고, 금주중에 한다는 두가지 조건을 충족한다면 채권단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원론적인 견해를 반복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