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회원으로 가입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 끝에 일단 가입했습니다. 매달 내는 회비 40만원 정도가 큰 부담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재벌 관련 세미나나 각종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통지 외에는 별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받아본 일이 없습니다. ”

국내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미국계 다국적기업의 한 관계자는 회사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사로 등록했지만 이 단체에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전경련은 한국 재벌을 대변하는 단체 아니냐”고 말했다.

기업구조조정이 2년여 계속되고 남은 몇몇 족벌 대기업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면서, 대한상의와 전경련,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들도 구조조정 바람에 휩싸이고 있다. 돈을 낼 회원이 자꾸 떨어져 나가는 데다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고 임직원 이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당한다는 시장원리가 이들을 `죽거나, 아니면 바꾸거나`해야하는 절박한 선택으로 내몰고 있다.

경제단체 가운데 가장 절박감을 느끼고 있는 곳은 전경련과 중소기협이다. 전경련은 대우그룹 몰락 이후 정부가 재벌에 대한 해체 압박을 가하자 몸을 잔뜩 움츠려 왔다.

최근에는 현대사태가 국민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도 한마디 입장 발표없이 숨을 죽이자, “전경련이 문닫은 것이냐”는 비아냥도 재계에서 나왔다. 전경련 사무국 이용환 상무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을 느끼고 있다”면서“전경련이 지금 개별기업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위축된 전경련 위상을 반증하기도 하지만 전경련의 자리매김을 다시 해야 할 때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전경련은 지난해말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간 협력·교류 확대라는 취지로`지식경제센터'를 열고 벤처기업 회원모집에 나섰지만 새로 회원에 가입한 벤처업체는 아직 하나도 없다.

또 같은 시기에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도 회원모집에 나섰으나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99년 대대적인 회원모집 캠페인으로 듀폰, 한국바스프 등 15개 외국계 기업이 새로 가입했지만, 올해는 새로 회원으로 들어온 외국계 기업이 도레이새한, 지엠(GM)코리아 2개뿐이다.

리더십 부재와 인력 유출도 전경련의 흔들리는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 올 들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는 삼성, 현대, 엘지 등 3대 재벌총수가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또 산하조직인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이 떠난 데 이어 재계 논리를 대변해온 유한수 총괄전무마저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우가 몰락한 뒤 현대마저 유동성 위기로 회비를 못내자, `월급이 안 나올지 모른다'며 간부급 직원들마저 줄줄이 사퇴해 조직이 흔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전경련을 떠난 직원이 인터넷에 `반 전경련 사이트'를 열어 전경련 비리를 폭로하고 나섰다.

참여연대 이승희 재벌개혁실장은 “전경련이 재벌 단체가 아니라, 기업들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건전한 단체로 지금 거듭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희 회장이 국회로 떠나 자리를 비우고 있는 중소기협도 하부 조합들이 회장직을 비우고 있는 처사와 중앙회 운영에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중소 벤처업체들도 업종별 조합 중심으로 운영되는 중앙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한상의쪽으로 기울거나 독자적인 단체결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중소기협의 위상변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반면 대한상의는 지난 5월 박용성 회장이 취임한 뒤 경제단체 가운데 가장 큰변화를 보이고 있다.

2003년부터 회원 강제가입 의무가 폐지됨에 따라 위기감을 느낀 상의는 기존 회원사 외에 돈 많은 벤처기업에 눈독을 들이고 적극 포섭에 나섰다. 아직까지는 벤처기업들의 매출액이 적기 때문에 회원에 포함되기 어렵지만 장기적인 포석으로 유망한 IT업체들을 대거 상의 상임의원직에 합류시켰다. 박회장 취임 후 한국휴렛팩커드, 한국통신엠닷컴, 에스케이텔레콤 등 정보통신업체대표들이 서울상의 상임의원으로 새로 영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한 미상의와 주한 유럽상의 등 외국 상공회의소들을 끌어들여 주한외국상의협의회를 결성하는 등 세확장에 성공하면서 발빠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 맏형' 자리를 되찾겠다는 상의의 공언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며, “최근의 전경련의 위축과 대한상의의 적극적인 변신 등 흐름을 보면 경제단체의 구조조정 결과가 머잖아 가시화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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