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회장 김창국)이 발간한 ‘99년 인권보고서’는 우선 “인권이란 강령의 형식으로 추상화되거나 형식화될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구석구석에 실질적인 권리로서 주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폭넓은 전제를 달고 있다. 이같은 기준에 따라 8개 분야에 걸쳐 평가된 99년 한국의 인권. 과연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이 개선돼야 할 것인지를 옮겨본다.

▽생명 신체의 자유〓정훈탁 변호사는 “경찰관과 군인의 총기 오남용 사고와 군 의문사,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씨랜드와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 등이 일어나 생명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고가 언제 재발될지 모르는 사회 구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사형제도와 관련, “궁극적으로 폐지하되 단계적으로는 사형의 선고 및 집행 자제, 정치범에 대한 사형 폐지라는 단계를 거치자”고 제안했다.

▽표현의 자유〓국가보안법 구속자 수는 줄어들고 있으나 제7조(찬양 고무)에 의한 표현의 자유 침해는 여전하다고 지적됐다. 한해 동안 모두 286명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됐는데 이중 91.3%인 261명이 제7조 위반 혐의자였기 때문.

정지웅변호사는 “정부가 준법서약서 폐지운동을 벌인 송계호씨를 재수감하는 등 서약서를 둘러싼 양심의 자유 문제가 여전하다”며 “또 외국 대사관 주변 100m이내에서의 집회를 금지하는 등 집회의 자유가 더 축소된 측면도 많다”고 말했다.

행형제도에 있어서는 미결수 사복착용과 족쇄 사용금지 등 진전이 있었으나 교도소 내 신문기사 삭제나 일부 서적 반입불허 등 비인도적 잔재가 남아 있다고 지적됐다.

▽노동자의 권리〓실업률이 떨어졌으나 일용직 및 임시직 급증으로 고용불안이 지속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사무직과 생산직간 임금 격차가 확대된 것으로 풀이됐다.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감축으로 노동시간이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최장 근로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며 95년부터 감소세를 보이던 산업재해율이 다시 증가하는 등 노동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

▽사법과 인권〓한정화 변호사는 “잇따른 법조비리 사건으로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사법개혁안을 제시했으나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 특검제 상설화 등 핵심적인 검찰 개혁안이 제외돼 전반적으로 ‘검찰 실무개선안’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비전향 장기수 등 양심수들이 사면됐으나 김현철씨 등 권력형 비리혐의자의 특별사면을 위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조치라는 것.

▽사회보장권〓‘생산적 복지’ 개념을 국정운영 지표로 제시하고 전 국민의 최저 생계를 보장하는 ‘국민기초 생활보장법’이 제정된 것은 높이 평가됐다. 변협은 그러나 전 국민 연금시대 개막을 맞아 직장인과 자영업자 등 가입자간의 공평한 보험료 부과를 위해 자영업자의 소득이 정확히 산정돼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고 밝혔다.

이상훈 변호사는 “전국적으로 중증 치매환자는 3만명, 병상은 1000여개에 불과해 치매노인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교육권〓김진 변호사는 10년 만에 전교조가 합법화됨으로써 교원의 노동 3권이 법률로 인정된 점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공교육 재정이 사상 처음으로 감소하고 곳곳에서 ‘학교붕괴’현상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김대중대통령은 취임전 국민총생산(GNP)의 6%를 교육재정에 할애하겠다고 밝혔으나 GNP 대비 교육재정의 비율은 97년 4.5%에서 99년 4.3%로 오히려 감소했다.

▽환경과 건강권〓염용표 변호사는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에 급급해 환경기술 개발 투자에 소극적이었으며 국제환경협약에 대한 범정부적 대응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존 오염, O―157균, 다이옥신 등에 오염된 수입식품의 관리 등에 허점이 노출됐으며 하수처리 찌꺼기(슬러지)로 인한 서해오염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 반면 폐기물 재활용 활성화와 1회용품 사용규제 강화는 고무적인 조치로 평가.

▽여성 및 아동의 권리〓이상희 변호사는 “대량 실업사태로 여성의 취업비중이 90년대 초반 수준으로 후퇴했고 여성 노동자 중 임시직 및 일용직의 비율이 69%에 이르는 것은 여성의 경제권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여성계의 주장대로 공무원 채용시 제대군인 가산점제가 폐지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원조교제 등 미성년자 윤락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고 늘어나는 가출 청소년의 비행도 심각한 여성문제로 대두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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