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명(76)씨.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서도 무려 45년을 복역한, 이름하여 ‘최장기수’. 그는 이제 2주일 후(9월 2일)면 우리 정부가 ‘아무런 조건없이’ 북쪽으로 보내는 62명중 한사람이다.

김씨의 요즘은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나름대로 남한생활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비전향 장기수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감회가 없을 수 없다.

6·25전쟁중 9·28수복때 월북해 의용군으로 자원입대했다가 51년 10월 유엔군의 포로가 된 그는 52년 8월 서울고등군법회에서 15년형이 확정됐다. 53년 4월 다시 ‘인민군 정찰대가 아니고 간첩부대인 526군부대에서 남파됐다’는 혐의로 간첩죄가 추가돼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로 감형됐다.

96년 8·15 특사로 45년만에 대전교도소를 나왔다. 자유를 되찾았지만 이미 늙을 대로 늙고 ‘비전향 장기수’란 딱지가 붙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형제들도 그를 외면했다.

“남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두 누이 말고도 동생 4명이 더 있지요. 하지만 감옥을 나온 지 5년이 넘었지만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어요. 그들 입장에서 저는 ‘화근덩이’였거든요. 이제 북으로 가렵니다. 출옥한지 보름만에 만난 어머니도 3개월만에 돌아가셨고요…. ”

김씨는 19일 밤 충북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의 한 폐교(단암초등학교)에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열어주는 ‘비전향 장기수 환송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북송되는 비전향 장기수 50여명을 포함해 민가협 회원 등 200여명이 모습을 보였다. 이 행사에 비전향 장기수들이 대부분 참석한 것은 자신들을 도와준 민가협 회원들, 그리고 잔류 장기수 등이 어쩌면 마지막으로 살을 부비며 잠 잘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행사장에는 ‘우리 꼬옥 다시 만나요’라는 이름이 붙었다. 장기수들은‘반갑습니다’‘다시 만납시다’ 등의 노래를 부르며 ‘양심수후원회’회원들과 처음 만났을 때를 촌극으로 되살려 보는 등 석별의 슬픔을 달랬다.

김씨에 이어 두 번째 장기수인 우용각씨는 고별사를 통해 “민가협과 양심수후원회 민가협어머니회 등이 보여준 동지애와 보살핌을 북에 가서도 잊지 못할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권오헌 민가협공동의장은 “사상전향서를 냈었다는 이유로 북송 신청을 했는데도 누락됐거나 북송자의 가족 중 북으로 가기를 원하는 경우는 6·15 선언 및 이산가족 상봉 추진의 정신에 비추어서라도 꼭 보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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