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에서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여전히 영국을 다스리고 있다. 그가 추진한 정책의 큰 틀은 토니 블레어 총리의 신 노동당 정부에 계승됐고, ‘영국병’을 고쳤다는 ‘업적’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이기 때문이다.

대처 전 총리의 최대 ‘성과’로 평가되는 것은 강력했던 영국 노동운동을 약화시킨 것이다. 70년대 영국노조의 강렬한 파업에 대한 비난이 일자 보수당 정부는 노조를 철저히 굴복시키는 대수술을 했다. 68년 노동자 학생 대투쟁의 영향으로 역시 노조의 힘이 막강했던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유럽국가들이 노동계와 대화하고 협조하는 정책을 선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수당 정부는 20년 동안 13개의 법안으로 단계적으로 노조를 압박했다. 파업 찬반 우편투표와 동조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노조 가입을 의무화한 클로즈드숍을 불법화하고, 파업현장의 피케팅도 7개로 제한했다. 그동안 노조 조직률은 53%에서 32%로 떨어졌다. 97년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이런 제도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으며,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국노동조합총연맹(TUC)과도 거리를 두었다.

계속된 노조 압박정책은 영국의 노사관계와 경제·사회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을까 지난 10년 동안 영국 경제가 괜찮은 성적표를 보여주었고 파업이 많이 줄었으며 외국인 투자가 늘고 정보통신, 금융, 문화산업이 호황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찾아간, 폭설로 꽁꽁 언 런던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석달째 계속중인 소방관노조(FBU)의 파업 행렬이었다. 2002년 11월 5만여명의 소방관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고, 교사 6만여명이 가세해 런던과 근교 2천여개 학교가 휴학사태를 빚었다. 런던 시내 32개구 구청직원 수천명도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 현재까지도 소방관 파업은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며칠에 한번씩 24시간 파업, 48시간 파업으로 계속되고 있다. 간호사들도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블레어 내각의 각료들은 “소방관 임금을 올리면 교사, 지방공무원, 간호사들도 줄줄이 올려줘야 한다. 임금 16%를 인상하려면 인원 삭감 등을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국노총의 닐 클리블리 정책부장은 이번 파업이 “공공부문의 임금이 사기업의 3분의 1 수준일 정도로 대처 시절부터 수십년 동안 정부가 공공부문 투자를 거의 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노조를 굴복시키려는 대처 정부의 일방적 압박 정책을 겪으면서 노동계는 경영자, 정부와 훨씬 심하게 대립하게 됐다”며 “70~80년대 파업이 많았음에도 전통적으로 영국 노사는 대화로 해결하고 말로 한 약속도 지키는 신의가 있었지만, 이제 서로 믿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노동계의 불만은 오랫동안 무르익어 왔고, 영국노총은 최근 노동당에 해마다 600만 파운드(120억원) 이상 지원해온 정치기금 삭감을 논의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됐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중앙노동위원회와 비슷한 조정중재위원회(ACAS)의 테리 리피아트 중재위원은 “70년대말 노조는 거의 매일 파업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당 정부의 노조 약화 정책은 이해할 만한 선택이었고, 노동당 정부가 그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옳다. 지금은 당시에 비해 파업이 5%밖에 안된다”고 정부정책을 옹호했다.

경영자단체인 영국산업연합(CBI)의 그레이엄 모튼 노사관계 정책보좌관도 “최근 공공부문에서 적대적인 노사관계가 나타나고 있지만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줄 만한 문제는 아니다. 경영계는 대처가 주도한 정책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도 “노조를 인정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더 나을 수 있었는데 대처의 노동정책은 독불장군 같은 면이 있었다. 또 대처의 정책 아래에서 제조업의 쇠퇴로 북부 지역이 낙후되고 런던만 발전한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조업이 강했던 북부의 몰락과 금융, 첨단산업의 중심인 런던 등 남동부의 번영은 영국에서도 ‘남북문제’라 불리는 사회문제다. 대처 정부는 고용유지를 위해 지원하던 제조업체 보조금을 ‘과감하게’ 없애 많은 제조업을 몰락시켰다. 1972년 700만명을 웃돌던 영국의 제조업 고용인구는 1990년 400만명으로 줄었다. 모튼 정책보좌관은 “노조 규제 법률보다 조합 힘이 강한 북부의 건설, 조선, 광산업 등을 몰락시킨 정책이 노조에 훨씬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대신 서비스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었고,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고용불안은 심해졌다. 그 결과 범죄율이 높아지자 노동당은 지난 선거에서 경찰 수 증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최근에는 감시 카메라를 시내 곳곳에 늘렸다.

최근 파업의 쟁점 가운데 하나도 ‘남북문제’로 물가가 너무 비싼 런던 지역 교사, 공무원들의 생활비 보상 문제다. 클리블리 정책부장은 “런던의 살인적 물가 때문에 이 지역 근무자들은 더 높은 수당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간호사, 교사 등이 힘든 생활 때문에 런던을 빠져 나가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며 “노조 안에서도 논쟁이 뜨겁다”고 전했다.

노조 약화로 영국병을 고쳤다는 찬사 뒤에서 잇따라 파업에 나서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노동계와 정부의 갈등, 노동자들의 박탈감과 공공서비스의 쇠퇴, 제조업의 몰락과 지역 격차에 대한 불만이 복잡하게 담겨 있었다.

런던/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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