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노사간 산별 교섭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법·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밝힘에 따라 기존의 노사관계와 교섭체계에 큰 변화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 산별노조 교섭체계 현황 = 1997년 기업별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이 법적으로 가능하도록 노사관계법이 개정되자, 98년부터 병원, 금융, 금속 등 주요 노조들이 속속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이렇게 노조 조직이 산별 체제로 바뀌고 있으나 노사 교섭은 여전히 기업별 교섭에 머무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조쪽이 산별 교섭을 요구해도 사용자쪽이 대부분 이에 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노조가 지난 2000년 사용자단체라 할 수 있는 병원협회쪽에 산별 중앙교섭을 요구한 바 있으나 병원협회쪽이 노동법상의 사용자단체가 아니므로 교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심각한 노사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에 따라 노사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산업별 차원의 노사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 체제에 걸맞은 법·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 노사 양쪽의 견해 = 노동계는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 및 노동조건 격차 해소, 비정규직 차별문제 해결, 산업별 고용창출과 노동시간 단축 등의 주요 현안을 위해서는 산별 교섭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노조쪽은 산별노조를 허용하는 법의 취지로 볼 때 산별 교섭이 가능하도록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야 마땅하나, 현실적으로는 사용자쪽이 거부하면 산별 교섭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기업별 교섭으로 인한 엄청난 비용과 시간의 낭비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산별 교섭이 제도화되면 사용자쪽도 개별적이고 중복적인 인사·노무업무가 줄어들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도 노사관계가 형평과 사회통합을 이루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사용자쪽은 기업별 교섭의 한계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산업별로 여러가지 형태의 산업별 교섭을 시도해볼 수는 있으나 산업별 교섭을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의사를 확실히해왔다. 경총 관계자는 “현재 산업별 노조의 현장 장악력과 기업별 근로조건 격차 등을 볼 때 중앙교섭을 하더라도 사업장별로 교섭을 다시 해야 하고 분규가 일어나는 소모적인 형태로 진행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경총은 과거 회원사에 내려보낸 ‘임단협 체결 지침’ 등에서 산별노조의 중앙교섭에 응하지 말고 기업별 교섭체계를 유지하라고 수차례 권고하는 등 산별 교섭 자체에 반대해 왔다.

◇ 인수위 방침과 전망 = 노사정위원회에 산업·업종별 위원회를 두게 되면 자연히 이곳에서 산별 또는 업종 차원의 노사간 협상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노사 공동협상은 기업별 교섭을 뛰어넘는 산별·업종별 교섭으로 산별 체제를 확립해나가는 여건을 형성해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인수위쪽은 산별 교섭 조건이 갖춰진 민간업종에서 사용자단체를 구성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독려하고, 공공부문에서도 한두곳을 선정해 시험적으로 산별 교섭을 운영하도록 해 그 결과를 평가한 뒤 확대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산별 교섭체계가 도입된다 해도 사업장 안의 기업별 노사교섭은 여전히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각 기업의 특수사정을 고려한 기업별 교섭체계를 유지하면서 중간수준에 산별 교섭이 있고 최상층에 노사정위원회가 있는 중층 교섭체계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갈 전망이다.

오상석,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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