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약품 제조업체인 유피케미컬의 인사 담당 조윤환 부장은 최근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실감했다. 인터넷 채용정보사이트에 생산직 직원 1명을 뽑는 채용공고를 냈는데 무려 80여명이 지원한 것이다. 조 부장이 더욱 놀란 것은 지원자의 거의 대부분이 대학졸업자였다는 사실이었다. 교육자재 제조업체인 토펙스의 안영식 차장도 얼마 전 비슷한 체험을 했다. 생산직 직원 4명을 뽑는 데 30명 이상이 몰려들었고, 이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대졸자였다. 안 차장은 “지난해부터 생산직 모집에 대졸자가 지원하기 시작해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눈높이를 낮춰 생산직으로 방향을 돌리는 대졸 구직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주요 채용정보업체들에 등록된 구직자 정보를 보면 이런 현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온라인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의 경우 대졸 생산직 구직자 수가 지난 99년 4323명에서 지난해 1만5499명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인크루트는 “생산직 구직자 가운데 대졸 구직자가 84%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잡링크 역시 지난 99년 2829명이었던 대졸 생산직 구직자가 2002년에는 1만450명으로 늘어났다. 취업사이트 스카우트에서는 최근 인기검색어 순위에 ‘생산직’이 처음으로 등장해 생산직에 대한 고학력 구직자들의 관심을 반영했다.

그러나 생산직 취업 역시 사무직 못지않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업체들이 인력난을 겪으면서도 대졸 구직자를 생산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고학력 구직자들의 경우 채용된 뒤 업무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금세 그만 두는 경우가 많은 탓이라고 업체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이에 따라 일부 구직자들은 학력을 속이고 지원하기도 한다.

금융업체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대졸 구직자 ㅅ아무개(29)씨는 “지난 한달 동안 30여곳의 제조업체에 생산직 지원을 했지만 고학력자란 이유로 모두 실패했다”며 “처음에는 생산직으로 들어가 관리직으로 옮기는 기회를 노릴 작정이었는데 이제는 취업 자체가 최우선이 됐기 때문에 학력을 고졸이라고 낮춰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토펙스의 안영식 차장은 “대졸자들의 지원이 늘어났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들 사이의 위화감이나 이직에 대한 우려 때문에 대졸자를 생산직 사원으로 뽑기가 쉽지 않다”며, “대졸자들이 생산직을 실업자 신분을 탈출하기 위해 ‘거쳐 가는 곳’ 정도로 여기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생산직 취업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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