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한 나라의 백년대계(百年?計)라고 했다. 유능한 인재의 확보는 국가발전의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동계에서 '교육'은 무엇인가?
이미 노동계에선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이런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한 원인 가운데엔 교육의 부재가 있지는 않을까? 현재 노동계의 교육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과제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관행적으로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이것을 바꿔야 한다. 노동운동의 목표가 있다면 교육을 통해서 가치관과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한국노총 전정하 전 교육국장)

"자본의 공세에 깊이 있고 폭넓은 대응을 하려면 인식과 행동을 통일하고, 단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

양대노총 모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선 한 목소리다. 그렇지만 막연한 의미에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될 뿐, 왜 강조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은 분위기다. 여전히 교육사업이 현안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 노동대학 교육모습


* 교육 활성화 '산 넘어 산'

그럼, 실제 양대노총의 노동교육 실태는 어떨까.

한국노총 교육은 그 담당자들이 지적하듯 "시대는 바뀌는데 교육내용은 여전히 노조 간부의 역할에 대한 1∼2시간 강의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심지어 일부 단위노조 간부들은 조합원들이 많이 알면 비판세력이 된다는 왜곡된 인식까지 갖고 있어 교육활성화에 걸림돌로 지적되기도 한다.

노총중앙교육원에서 실시하는 교육은 대부분 노조간부들을 대상으로 실시돼 노조간부들은 똑같은 내용의 교육을 수 차례 반복하기 일쑤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은 노조행사에 강의 몇 시간 끼워넣는 식으로, 조합원들은 교육기회 대신 체육대회 같은 이벤트에 몰릴 뿐이다. 정보통신연맹 이현수 기획국장은 "조합원들이 상대적으로 교육기회와 민주적 의사결정 경험 등이 부족하다보니 책에 나오는 무슨 '주의' 등에 대해 교육해봤자 관심이 없다. 현장에 밀접한 내용들을 갖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또 "최근 노동계 화두가 되고 있는 손배소, 가압류 등에 대해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로 여길 경우 관심이 없다"며 "노조간부라면 노동계 현안에 대해 잘 알고, 전문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도 노동교육이 절실하고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쪽은 출범 전 90년대 초반까지 핵심 활동가 중심의 이른바 '의식화' 교육이 활발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체감지수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동구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이념의 혼란과 동요, 학생운동의 침체 등이 원인이 되면서 이른바 의식화 교육은 쇠퇴했고, 이른바 전문성이란 이름 아래 재무제표 분석, 교섭 전략 등 실무중심의 교육이 유행하던 때도 있었다.

핵심 활동가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교육사업 활성화를 위해 재정 및 인력확보 필요성이 부각된 것은 불과 두, 서해 전부터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도 현실의 높은 장벽에 부딪혀 있다는 형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9월 조사한 데 따르면, 상급단체 교육참여시 어려운 점으로 민주노총 응답자 중 가장 많은 36.4%가 '교육시간이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민주노총 간부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긴 하지만 교육사업이 현안사업에 밀려 있음을 짐작케 한다.

* 인력 부족 속 교육 예산 0.3%의 현실

교육사업이 현안에 밀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 단적인 예가 교육부문에 배정한 예산이다. 한국노총은 교육부문에 따로 배정하는 예산이 없으며 민주노총도 1년에 1,500만원 정도로 총예산의 0.3%(지난해 기준)에 불과하다.

한국노총은 교육인프라라 할 수 있는 중앙교육원이 있지만, 사무총국과 교육방향과 프로그램에 대한 협의와 연계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도 교육원 설립계획을 갖고 있지만, 자체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법률원과 달리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보니 계획대로 2004년까지 교육원이 설립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아직 교육원 설립에 필요한 재원마련 대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교육활성화를 위한 선결 과제가 교육전문 인력 확보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산하 연맹에 교육업무를 전담하는 상근 간부가 없는 현실도 각 조직에서 '교육업무'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한국노총은 전정하 교육국장 임명 전에는 교육사업 전담자가 없었던 데다, 2년이 채 안 돼 외부요인으로 인해 교육국장이 최근 변경된 실정이다. 또한 교육국이 조직본부 내에 배치돼 있던 것도 교육을 조직강화사업의 부분 업무로 바라보고 있다는 예다.

민주노총도 다양한 프로그램에 비해 책임지는 간부가 아직 두 명뿐이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민주노총 한선주 교육부장은 "(한국노총과 달리)민주노총은 교육원이 부재, 교육환경이 열악하고 줄을 잇는 투쟁일정으로 간부들이 여유가 없는데다가 교육과정이 비상설적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 현장 교육 실태는 더 심각

민주노총은 간부교육 1·2과정, 위원장 교육 1·2 과정, 노동자학교, 노동대학 등 단계별 교육체계를 갖고 있으며, 실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선전, 조사통계, 사회보장, 산업안전, 여성, 법률, 정치분야 교육이 있다. 또 현안과 관련한 방침교육도 그때그때 실시한다. 올 초 첫 중앙집행위원회 수련회(1월6∼7일)에서는 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뒤늦게나마 회의진행방법 등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기도 했다.

실제로 10개월 과정의 노동대학은 노동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재작년 97명의 입학생 중 정상적으로 학업을 마친 졸업자는 28명에 그쳤다.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노동자학교는 이미 400여명이 졸업하는 등 노동대학에 비해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노총도 올해 처음으로 노조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1년 과정의 초·중급 교육과정을 중앙교육원에 개설, 상설화했다. 노조간부 기본과정, 심화과정, 전문화과정으로 세분화하고 노동운동사부터 시작해 한국자본주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선전·선동 등 실무교육까지 교육내용을 체계화했다. 그동안 중앙교육원 교육프로그램이 '노조간부의 역할과 자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을 볼 때 큰 변화다. 하지만 이 교육과정은 '희망자'를 대상으로 해 실제 노조간부들이 어느 정도나 관심을 가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양대노총 모두 중앙 차원의 교육프로그램은 점차 다양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현장교육은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민주노총 과기노조 소속 한 지부사무국장은 "지난 97년 민주노총이 실시한 정치교육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게 상급단체 교육에 참여한 유일한 경험"이라면서 "계속 노조활동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고갈돼가고 있는 느낌이어서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늘 여유가 없다. 조합원교육도 준비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이나 강사 등을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의 경우 노동대학을 운영하는 금융노조 외에는 연맹 차원의 정례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곳은 없다. 한국노총 교육국은 "교육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시급하기 때문에 조합원 대상 교육에 앞서 노조간부 교육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 교육, '노동자 학습권' 관점서 봐야

이렇듯 모든 조합원에게 충분한 교육기회가 제공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난 대선은 다시 한번 노동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매년 임금인상 투쟁이나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안과 관련해선 특별한 교육 없이도 조합원들이 모이는데,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에 관심이 모이지 않는 것은 조합원들의 인식수준에 편차가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대선 때 여실히 드러났지만, 양대노총 공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했음에도 노동자·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는 진보정당의 득표율은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일각에선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하라고 한참 싸우다, 정치활동이 보장되니까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른바 '계급투표'라고 하는 게 정치적 각성의 문제라면 그 연결 고리는 역시 교육인 만큼 노동교육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경제적 요구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요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요구들을 정부만 해결할 수 있다는 대리주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의식들을 바꿔내는데는 무엇보다 세계관을 바꿀 수 있는 노동교육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정치교육에 있어서는 노조가 모든 걸 담당하기 보다 노동자 정치운동을 하고 있는 주체들이 직접 노동자교육을 담당할 필요도 있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선지현 연구원의 지적이다.

민사당 창당 당시 한국노총이 전국을 순회하며 폭넓은 정치교육을 한 경험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저런 논란과 불구하고, 그나마 무난히 창당이 성사된 데는 집중적인 정치교육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당시 유재섭 상임부위원장도 "창당 목적을 조합원들에게 성심껏 설명해 본 결과 생각보다 호응이 높았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양대노총의 교육사업 담당자들은 이런 실태를 타개하기 위해 나름의 대안 마련에 분주하다.

민주노총 한선주 교육부장은 "단협상 단위노조 교육시간뿐만 아니라 상급단체 교육시간을 확보하도록 해야 하고, 지역단위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등 모범사례를 취합해 노동교육 관련 단협을 체결해야 한다"고 교육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민주노총은 또 평생교육 과정에 노동교육이 포함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다. 한 부장은 또 "말만 중심사업이라고 할 게 아니라 지도부부터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여러 회의기구에 교육적 요소를 가미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내실화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한다는 구상은 현재 교육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모색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노총도 지난해 교육담당자 워크숍을 갖고 7대 핵심과제와 15개 실천과제를 선정했다. 한국노총 교육담당자들은 7대 핵심과제로 노총 임원과 산별 지도부들이 교육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고, 교육사업의 방향이 부재하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에 따른 실천과제로 교육예산 확보, 교육전문가 양성 등을 제시했으며 올해 중앙교육원의 교육프로그램이 내실화된 것이다. 전정하 전 교육국장은 "한국노총에서 위기인식이 확산되고 이를 돌파하기 위한 목표가 설정되면 교육사업이 더 부각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한국노총의 최근 위기가 지난 대선 때 정치방침의 혼선에서 야기됐고, 민사당 강화가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교육사업의 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강연배 교육실장은 "노동교육을 단순히 조직강화를 위한 선전 선동을 위한 장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신념, 노조실무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노동교육 문제를 노동자의 학습권 확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제도적인 보완과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학습권 확보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은 평생교육법 등 제도적으로 정부가 노동자 교육을 인정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관심을 돌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노조조직의 재정적, 인적 상황에서 깊이 있고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는 한계가 분명하다. ILO협약에 근거해 노동자 교육권을 확보할 경우 직업훈련은 물론, 보다 폭넓은 노동자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2월 출범하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교육개혁은 빠짐없이 포함돼 있다. 노동계도 새 정부에 대한 요구와 대응을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장기적인 안목으로 노동교육에 대한 고민과 투자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송은정 기자(ssong@labornews.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