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역사와 체계가 다른 외국의 경험들에서 우리 노동교육이 지향해야 할 어떤 모델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타산지석의 지혜로 우리 노동교육의 앞날을 가늠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눈길을 돌릴만한 게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덴마크, 독일, 이탈리아의 노동교육 현황을 소개한 <다섯나라 노동교육 사례와 한국노동교육 과제 연구>(2001년)라는 제목의 민주노총 자료집이다.

자료집에 따르면, 이들 나라의 역사속에서 노동교육은 크게 세 단계를 거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민중교육의 단계→급진적으로 정치화된 계급교육의 단계→제도화의 단계다.

독일의 야학운동, 스웨덴과 덴마크의 '민중학교', 남아공 노동운동의 흑인노동자들에 대한 문맹퇴치 성인교육운동 등이 첫 단계에 속한다. 유럽나라들의 경우 18∼19세기를 거치면서 노동대중들에게 근대적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전개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런 경험들이 노동교육 발전에도 도움이 됐다.

두 번째 단계는 계급적 관점에서 체계적인 이념 및 정치교육이 진행되던 시기이며 세 번째 단계는 변혁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은 퇴조하고 노조는 제도적 권리를 확보한 대중조직으로 정착된 시기에 이뤄졌다. 노동교육은 법제화된 교육권으로 혹은 단체교섭에 의해 노조의 권리로 정착, 평생교육권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노조는 여전히 기업별 체계로 묶여있고 정치세력화 수준도 아직 낮은데다 정치, 경제적 환경과 특성도 달라 앞서의 일반화 모델처럼 계급교육에서 평생교육 단계로 발전방향을 잡을지는 알 수 없다. 노동운동의 노선 역시 아직 '변혁'이냐, '사회개혁'이냐에 대한 합의는 물론, 깊은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와 관련, 노동계에선 세 번째 단계를 우리 노동교육의 발전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에서 세 번째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노조의 지난한 요구와 투쟁은 물론, 노조의 조직적 지지를 얻은 개혁적 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영향력 확대 혹은 집권이 노동교육의 제도화를 뒷받침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 중 스웨덴 노동교육에 대한 제도적 여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스웨덴노총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ABF(노동자교육협회)와 수많은 민중학교들과 연계돼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데는 법적 제도가 뒷받침된 결과다.

물론 스웨덴도 사민당 정부가 집권했기 때문에 이런 노동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 법제도화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사민당 정부는 70년대초 노동시장과 관련된 개혁작업의 일환으로 '노동자 교육휴가에 관한 법'과 '노조 현장위원 지위에 관한 법' 등을 제정했다.

'노조현장위원법'은 노조 대표자들이 노조업무와 관련한 교육시간을 보장받으며, 교육활동가들은 작업장 활동에 필요한 주제나 분야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권리도 갖게 했다. '교육휴가법'은 모든 노동자(파트타임 노동자 포함)가 모든 종류의 학습교육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독일 노동자들도 1919년 사민당의 집권과 더불어 제정된 바이마르 헌법으로 독일역사상 처음으로 성인교육권을 보장받았다. 성인교육법은 노동교육도 성인교육의 일환으로 인정하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는 노조교육과 관련한 법률이 없지만, 1970년의 노동자헌장이 노조 대의원들에게 1개월에 8시간의 유급활동시간을 보장하고 있다. 그 대신 노사간 힘의 관계 속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교육이 인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금속산업의 단협은 3년간에 걸쳐 150시간의 유급교육휴가를 인정하고 있다.

이렇듯 노동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육권 확보를 위한 법·제도를 개척해 온 이들 나라의 경험은 우리 노동계에도 시사하는 게 많다고 하겠다.

송은정 기자(ss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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