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여파로 유해화학물질 잔여농도를 측정하는 업무를 떠맡은 석유화학공장의 보건관리자가 조혈기계 암에 걸려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대림산업㈜ 안전환경팀 간호사로 일하다 지난해 11월18일 악성 림프종으로 숨진 김귀경(당시 34살)씨의 유족들은 27일 “김씨의 죽음이 업무상 질병에 따른 산업재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1994년 2월 입사한 뒤 줄곧 건강검진 업무 등을 담당했으나, 1998년 3~9월 회사의 지시에 따라 환경기사가 해왔던 ‘작업환경 수시측정 업무’를 맡았다. 김씨는 이 기간 발암성 물질인 벤젠의 탱크내 잔여농도를 17차례 측정하고 이를 회사 보건일지에 기록했으며, 특히 98년 3월25일에는 탱크 안 벤젠 농도가 45~50ppm까지 나타나며 극심한 호흡장애와 두통 등을 겪은 것으로 기록했다. 이후 김씨는 2001년 10월9일 조선대병원에서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았고 지난해 5월말 재발해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11월에 사망했다. 이에 따라 김씨 가족은 근로복지공단 여수사무소에 ‘유독성 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됐고, 과중한 업무로 면역력이 저하돼 발병했다’며 산재 신청을 냈으며,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

조선대병원 이철갑 교수(산업의학 박사)는 “벤젠과 조혈기계 암 발생이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오는 7월부터 허용노출 기준이 10ppm에서 1ppm으로 강화된다”며 “김씨가 발병 전까지 3~4년 동안 수차례 고농도의 벤젠에 노출됐던 것이 림프종 발병과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대림산업쪽은 “보건관리자에게 작업환경측정 일을 맡길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며 “화학공정 현장에서 일하지 않았던 김씨가 몇차례 작업환경 측정업무를 한 것이 암 발병의 직접원인이 됐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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