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단식농성 21일째를 맞은 지난 16일 저녁 롯데호텔노조 조합원 이모(34세)씨가 단 위원장에게 단식을 중단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글을 보내와 그 전문을 싣는다. 필자가 평조합원 신분이고 파업 중인 점을 감안해 이름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편집자 주>

총파업 69일째를 맞고 있는 호텔롯데 노동자들은 새 천년에 새롭게 세상을 보는 눈을 뜨고 있습니다. 성인의 나이를 훨씬 넘은 노동조합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민주노조의 걸음마를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장기파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흔들임 없이 대열을 유지하고 있는 호텔롯데 노동자들에게는 20여년간 쌓인 울분을 모두 토해내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80년대식 종속적인 노무관리만을 주장하는 회사.

임원들의 온갖 횡포는 방관하면서 직원들의 작은 실수는 트집잡아 징계하는 회사.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IMF라는 이유로, 회사는 흑자경영을 하고 있는데도 젊음을 바쳐 일한 직원들을 헌신짝 버리듯 내쫓고 상여금 강제 반납, 정년단축, 성희롱 방관 등 지금까지 호텔롯데 조합원들의 가슴에는 20여년간의 한(?)이 맺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겨울 회사에 민주노조의 깃발을 새롭게 올리고 사측의 방해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총파업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민주노총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버팀목인 민주노총의 단병호 위원장님이 서울역 광장에서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을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저희 호텔롯데 문제와 사회보험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살신성인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지만, 적지 않은 연세와 무더위 속에서 자칫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저희는 1,300만 노동자와 단 위원장님께 고개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

힘있는 집단의 요구에는 적극적인 개입과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 힘없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외면과 탄압을 일삼는 현 정부의 잘못된 노동정책은 더 이상 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호텔롯데 문제뿐만 아니라, 새한노조, 마마노조 등 단 위원장님의 손길과 투쟁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호텔롯데 조합원들은 단 위원장님의 사랑과 열정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이제는 우리보다 더 단위원장님의 관심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단식투쟁을 중단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단식이라는 투쟁 방법을 바꾸어 현장을 누비면서 연대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투쟁 일선에 서서 1,300만 노동자를 대변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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