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지난 4·2 총파업 유보사태로 인해 올 한해 동안 심각한 지도력 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있어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6·13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이란 두 차례 전국 선거를 통해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계급 투표 가능성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제 3당으로 끌어올리는 데도 적지 않게 기여했다는 자평이다.
민주노총은 더욱이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04년 총선에서는 노동자 밀집 지역구에서 의원을 당선시키고 정당명부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의석까지 확보,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확인된 계급 투표 가능성
민주노총은 이미 지난 1월30일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올해 두 차례의 전국 선거가 향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중요한 포석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민주노동당지지, 지원'이란 확고한 정치방침을 수립했다.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확정된 정치방침은 두 차례 전국선거에서 △노동자의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고 △노동자의 주요요구를 확산 및 관철하며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강화하고 △진보진영의 정치적 단결과 당의 강화를 이룩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 선거방침으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대선투쟁 전개 △민주노동당 후보지지 계급투표 조직 △현장 대중정치운동 강화 △조합원 1인 1,000원 모금운동 △하반기 대중투쟁과 선거운동 결합 등을 설정했다.

이런 방침은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당투표 지지율 8.1%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에 대한 3.9% 득표율이라는 예년에 비해 크게 상승한 수치로 나타났다. 더구나 대선이 양강구도로 진행되면서 유권자들의 사표심리가 강했고 선거막판 '정몽준 쇼크'라는 악재가 작용했음에도 울산과 경남, 경기도 등 제조업 노동자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지지율을 나타났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에 따른 제조업 조합원들의 표 집중 현상을 통해 계급투표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특히 대선에서 울산 북구 22.16%, 울산 동구 15.15%, 창원 9.23%, 거제 9.32%, 평택 8.09%, 화성 6.47% 등 제조업 노동자 조합원 밀집지역에서 지지율이 두드러졌다. 또 사표심리가 강하게 작용해 0.96%라는 지지율을 기록한 광주지역에서 조차 기아자동차와 금호타이어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광산구에서 1.41%를 득표해 가능성을 남겼다.

선거운동과정에서도 지구당조직과 지역본부들간에 공조체계가 강화됨으로써 앞으로 지지율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1,000여명의 정치실천단이 활동했으며 민주노동당 지구당이 없는 지역에서는 단위사업장과 시 협의회 등에 연락사무소를 설치, 선거운동에 가세했다. 더구나 민주노동당은 이런 지역차원의 연대활동 강화를 바탕으로 현재 109개인 지구당을 내년 한해 동안 200여개로 늘릴 계획이며 2004년 총선에서 100여명의 지역구 후보를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수도권 사무직 지지확대 과제

반면 전국 유권자의 절반이 모여 있는 수도권 지역에서 안정적인 선거공조와 지지율 상승은 민주노총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졌다. 더구나 대선을 앞두고 공공연맹,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등 서울에 중심을 두고 있는 주요연맹들 자체선거 일정이 진행됐으며 서울지역본부는 이들 연맹 산하 사업장에 대한 영향력이 미약한 실정이었다.

서울본부 배기남 수석부본부장은 "서울 유권자가 워낙 많아 지지율이 낮은 것이지 서울지역 17만 조합원들이 제조업 조합원들보다 계급투표 성향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문제는 선거운동 등이 활성화되지 않으면서 지지 성향이 주변으로 전파되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업무자체가 개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제조업 대공장과 달리 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한데다 현장조직도 활성화되지 않아 정치의식도 개인적인 편차가 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 더구나 이런 특성을 극복해야 할 연맹 집행력이 자체선거로 인해 원활히 움직이지 못한 게 서울지역에서 대선활동을 더욱 어렵게 했다는 분석이다.

민주노동당 선대위 이근원 조직위원장은 "사무직 노동자들은 '진보'보다는 '민주화' 담론에 더 영향을 받고 당선가능성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보다 구체적인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고 비례대표제 확대 등 제도적 측면에서 당선가능성을 높이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사무직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정치활동과 현장활동을 강화시킬 수 있는 연맹과 단위노조 차원의 노력이 진행돼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개혁 투쟁도 본격화 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제도 개선과 수도권 지역에서의 지지율 상승은 1년4개월 앞으로 다가온 2004년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 구성 목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민주노총은 올해 두 차례 선거를 통해 다져진 계급투표 성향과 지역차원의 정치활동을 단위사업장 소모임 활동 등으로 일상화시키는 작업을 내년도 정치사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또 지구당과 현장분회 건설, 일상적인 정치조직 세분화 등을 통해 2004년 총선 준비를 일찍 시작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선거제도 개혁이 민주노동당 원내 교섭정당 구성의 발판이 될 것으로 판단해 민주노동당과 긴밀히 협조해 정치개혁투쟁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김재홍 기자(jaeh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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