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아쉬움이었다. 선거과정에서, 그리고 TV합동토론회 등에서 이미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런 의미와 객관적 사실은 엄연히 다르다. 진보정당의 숙원이던 100만표 고치점령.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돌출행동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선전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은 마지막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충분히 승리한 선거지만 100만표와 96만표는 느낌이 다르잖아요. 정몽준 파문만 아니었어도…." 이미 자정이 넘어서 개표가 99% 진행되고 TV도 노무현 당선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비추는 데 여념이 없지만 당사에 모여있던 당직자들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아쉬움이 좀처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정몽준 파문, 유탄 아닌 직격탄"

19일 저녁 6시부터 자정무렵까지 대통령 선거 개표가 진행된 6시간 동안 민주노동당사에는 100만표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이 쉴새 없이 교차했다.
이미 투표마감과 동시에 3.5%(KBS)에서 4.5%(SBS)로 발표된 방송사 출구조사는 5% 득표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렸다. 선거막판 정몽준 악재로 권 후보 지지표가 노 후보에게 흘러갈 것으로 예상은 했으나 출구조사가 발표되면서 이탈표가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정몽준 대표에 대한 비난이 터져 나왔다.
한 당직자는 "서울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50만표 이상은 빠져나간 것 같다. 오히려 민주당보다 우리 당이 정몽준 파문의 유탄이 아니라 직격탄을 맞았다"고 아쉬워했다. 권 후보와 고위당직자들, 그리고 민주노총 관계자들도 시종일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녁 7시를 넘어서 본격적인 개표가 시작돼도 득표율이 좀처럼 상승하지 않자 권 후보 부인인 강지연 여사는 당원들부터 걱정했다. 강 여사는 "당원들이 선거 마지막날까지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당원들이 스스로가 만족스러워 하지 못할 것 같아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강 여사는 개인적으로는 만족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원들이 만족하면 나도 만족한다"고 웃음을 보였다.
당사에 모인 노동계 인사와 당직자 등 100여명도 중앙홀과 기자회견실에 나뉘어 투표율과 득표율에 따른 득표수를 계산해가며 낮아진 득표율 속에서도 100만표를 득표할 수 있을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저녁 8시를 넘어 개표가 중반으로 접어들자 지역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쌍용자동차와 만도기계가 위치한 경기 평택,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북구와 동구 등에서 득표율이 높게 나오자 당직자들은 해당사업장 이름을 연호하며 잠시 득표율 저조에 대한 시름을 잊었다. 또한 연락사무소 하나 제대로 없는 일부 농촌지역에서 5%대 이상의 득표율이 나타나자 한 당직자는 "다른 요인에 영향 안 받고 우리 당 정책만을 보고 찍어준 소중한 표들"이라며 기뻐했다.

* 그래도,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반면 서울지역에서의 열세는 마지막까지 극복되지 못했다. 본지에 권 후보 지지글을 기고해 화제를 모았던 한국노총 금융노조 박창완 통일위원장은 촉촉해진 눈으로 "서울지역 사무직 노동자들이 많이 흔들리면서 서울을 너무 쉽게 내줬다"고 아쉬워했다.
끝내 3.9%에 머물던 득표율은 4%벽을 넘지 못한 채 개표는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100만표에 대한 기대는 서서히 '100만표 육박'의 위안으로 바뀌어 갔고 권 후보도 자정무렵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개표방송 시청을 마무리했다.

당직자들을 불러모은 권 후보는 "고생 많이 했다. 언론용 멘트가 아니라 정말로 이번 선거는 희망의 씨앗을 심은 선거였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당직자들을 격려했다. 특히 97년도 대선 상황을 언급하면서 "당시 30만표를 얻고도 우리는 당을 만들어 냈고 지금에 이르렀다"며 "이 정도 득표면 이제부터 뭘 못하겠냐. 나 자신부터 한 알의 밀알이 돼 동지여러분들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가슴을 폈다.

"새 세상을 꿈꾸는 자만이 새 세상의 주인이 된다" 새벽 1시를
넘어 당직자들이 둘러 않은 당사 인근 술집에서는 민주노동당가가 울려났다. 취기로 '창당 1주년 기념가'를 시작했던 당원들의 얼굴에는 다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마음 한구석에 남은 아쉬움까지 밀어내려는 듯 당원들은 주먹에 힘을 모아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민주노동당은 아쉬움을 떨치고 새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민중이 주인 되게 … 민주노동당이여 이제는 전진이다"

김재홍 기자(jaeh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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