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원장직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못할 것도 없는' 자리로 불린다.

딱히 주어진 재량권은 없지만, 위원장의 역량에 따라 시장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초대 이헌재 위원장은 이를 잘 활용해 내외신으로부터 '금융황제' 로 불렸다.

3대 금감위원장을 맡은 이근영 신임 위원장은 "전임자들의 장점을 많이 연구했다" 며 "대과없이 임기를 마쳤다는 소리는 듣지 않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정부를 떠난 후 투신사와 은행 등의 경영자로 줄곧 당국의 감독 대상이었던 李위원장은 스스로를 '시장 친화적인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 피감독 기관장에서 감독권을 행사하는 금감위의 수장으로 1백80도 입장이 바뀌었다. 소감은?

"역지사지란 말대로 피감독 기관을 경영한 경험이 약이 되게 하겠다. 누구보다 금융인의 애로를 잘 안다. 금융감독도 하나의 서비스다. 고압적. 권위적 태도를 벗고 피감독 기관의 입장에서 감독이 이뤄지도록 하겠다. "

- 상대적으로 전임자들에 비해 부드러운 인상이어서 금융. 기업 개혁도 느슨해 질 것이란 평이 있다.

"구조조정은 성품으로 하는 게 아니다. 한국투신.산업은행 경영 시절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욕은 덜 먹었다. 부드러운 인상 덕을 본 셈이다. 부하직원들한테 '웃어가며 뺨때리는 사람' 이란 얘기도 들었다. "

- 2차 금융. 기업 구조조정의 방향은.

"1기 내각이 정한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방법론에선 보다 시장 자율. 친화적이 되도록 하겠다. 꼭 필요한 정책도 시장에서 외면당하면 효과가 없다. 예컨대 과거 경제팀이 시장안정을 위해 채권형펀드를 조성한 것은 좋았지만 이를 금융기관이 자기 계산에 따라 스스로 참여할 수 있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

- 공적자금은 바닥났는데 부실은행 지원 등 2차 구조조정에 따른 자금수요는 자꾸 늘고 있다.

"지금은 추가로 필요한 자금규모를 정확히 산출하기 어렵다. 은행들의 자구계획을 받아 지원규모 등을 따져본 뒤 모자라면 국회 동의를 거쳐 공적자금 추가조성에 나서겠다."

- 금융노조 파업 때 노정 합의에 따라 인력. 조직 감축이 어려워진 만큼 구조조정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

"9월 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8%가 안되는 은행은 자구계획을 내게 돼 있다. 이때 인력.점포 감축은 기본적으로 노사 협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력.조직감축 없는 자구노력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공적자금을 집어넣고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

- 현대사태 등 기업문제를 처리하면서 정부는 '시장 신뢰' 란 표현을 즐겨 썼다. 시장신뢰란 게 구체적인 정의가 없어 모호할 때가 많다.

"우선 주가와 자금시장 반응을 따져봐야 한다. 현대가 자구노력을 내놓고 나서 계열사 주가가 오르고 금융권 반응도 좋다. 현대의 자구계획이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시장이 평가한 셈이다. "

- 현대 자구계획은 '3부자. 가신그룹 등 문제경영인 퇴진' 등이 이뤄지지 않아 '반쪽의 성공' 이란 평가도 있다.

"정부가 누구를 찍어서 물러나라고 한 적은 없다. 문제가 있는 경영진은 주주총회나 이사회가 알아서 걸러낼 것이다. 현대도 그렇게 약속했다. 지켜보면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다. "

- 현대사태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편 방향은?

"지배구조개선은 딱히 금감위 소관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개혁이란 큰 틀에서 보면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드는 것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국내재벌들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형태로 바꿔가는 게 목표다. 방향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이 옳다고 본다. 기업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인 만큼 고객이나 경영진보다 주주가 중요하다. 그런 쪽으로 지배구조 개선이 안되는 기업은 여신제재 등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

- 증시 침체와 개각 등에 따라 삼성. 교보생명 등 생명보험사의 연내 상장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형 생보사는 상장을 통해 시장의 견제와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주주. 계약자 배분원칙에 따라 이르면 이달 중 상장안을 마련, 예정대로 연내 상장을 추진하겠다. "

- 정부의 시장안정 대책이 약효를 내지 못하면서 자금수요가 몰리는 추석을 전후해 자금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추석 자금난을 포함해 시장안정을 위한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단기적으로 필요하면 한국은행에 유동성 지원 등을 요청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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