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기다려온 그날이 왔다.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15일 오전 이산가족 방북단은 밤새 설렘과 기대로 뒤척이느라 잠을 설쳤지만 몇 시간 후면 50년만에 혈육을 만난다는 생각에 피곤함도 모두 잊은 듯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새벽부터 방을 나와 서성거리던 이산가족들은 오전 7시께부터 지하 1층 썬플라워룸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간밤 꿈 이야기 등을 나누며 곳곳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여장을 꾸린뒤 가벼운 정장이나 한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온 이들은 로비와 주차장 곳곳에서 배웅 나온 자식들과 환송인사를 나누거나 손주들을 안고 뽀뽀를 받는 정겨운 장면도 연출됐다.

또 그새 정이 들었는지 평북 영천이 고향인 채성신(73), 이선행(81) 할아버지등 7명은 호텔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주소를 교환하는 등 한 고향사람이나 친해진 이들끼리 나름대로의 기념행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버스 출발직전 몇몇 이산가족들은 배웅 나온 가족들과 취재진을 향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선물받은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시계 등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전날 동생 한명이 더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감격에 겨워했던 김준섭(67) 할아버지는 "얼굴 한번 못 본 동생까지 만날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에야 잠깐 눈을 붙였다"며 "오늘이 정말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는 그 날인가..."라며 감격을 주체하지 못했다.

한금려(77) 할머니는 "가슴이 두근거려 새벽 1시까지 못자다가 우황청심환을 먹고서야 잠들었다.

지금도 심장이 떨려 오후에 가족을 만나기 전에도 약을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고 장기려 박사의 아들로 의료진으로 방북하는 장가용(65. 서울대 의대 교수)박사는 "잠은 좀 설쳤지만 오늘 아침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산가족들을 보니 절로 기운이 난다"며 "방북해서 가족을 볼지 모르겠지만 내게도 꼭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고 기대를 걸기도 했다.

이홍(71) 할아버지를 배웅나온 손녀 이지선(11)양은 "할아버지가 방북단 100명에 포함된게 신기하기만 하다"며 "평소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던 할아버지가 드디어 북에 계시는 형제들을 만나게 되셔 기쁘다"고 말했다.

10대의 버스에 나눠 탄 이산가족과 정부 관계자들은 오전 9시40분께 김포공항을 향해 출발했고 호텔 직원들은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며 환송했다.

이날 오전 워커힐 호텔에는 방북하는 선우예환(78) 할아버지의 동향 친구인 선우응일(72)씨가 찾아와 북에 있는 가족들 안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며 사진을 건네는 등 방북단에 탈락한 많은 이들이 몰려와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이들이 떠난 뒤 호텔측은 곧바로 객실 정리 등에 들어가 북측 이산가족 맞이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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