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폐업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신문과 TV에서는 하루종일 의사폐업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 정부와 의사단체들간의 교섭 소식을 전하느라 정신이 없다. 바로 그 시간에도 민주노총 지도부가 서울역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지만 거기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의사들 폐업의 파장이 노사관계 쟁점들을 밀어내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노사관계의 사회적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의사폐업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농성은 모두 정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게 요구된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은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에 강한 회의를 느끼고 있다.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 의사폐업 사태, 2주 넘게 진행하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농성사태에 대해 정부는 시원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팔장끼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름대로 중재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고, 그 부담은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지난주에는 현정부 집권 후반기를 이끌어갈 대규모 개각이 있었다. 개각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희망을 가졌었다. 새로운 정책책임자가 임명되면 뭔가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각이후의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노동계의 경우, 신임 노동부 장관이 임명되고 처음으로 서울역 농성장을 방문할 때만해도 기대감을 표시했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났지만 롯데호텔이나 사회보험노조 파업사태는 풀리지 않고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 내에서는 점차 실망의 기색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 내에서는 8월15일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계속적인 대정부 투쟁으로 나가야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의 서울역 농성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민주노총과 정부 모두에게 불리하다. 민주노총으로서는 단병호 위원장이 단식을 하고, 지도부가 농성을 하는 등 강도높은 투쟁을 하고도 문제해결을 못할 경우 지도력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의 대정부 투쟁이 계속될 경우 정부의 문제해결능력 자체에 흠집이 갈 수밖에 없다. 특히 집권후반기에 현대사태, 의사폐업 등으로 정부의 국정장악력이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서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안고 있는 쟁점들을 빨리 해결하지 못할 경우 그것은 하반기 노사관계에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주가 지나면 노사관계는 하반기로 접어든다. 하반기에는 노동시간단축, 비정규직 문제, 노조전임자, 복수노조 등 다양한 쟁점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까지 현안 쟁점들이 해결이 안될 경우 현재의 대립적인 분위기는 하반기 노사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부는 하반기 제도개선 쟁점들에 대해서 일차적으로 노사정위에서의 논의를 통해 제도개선 방안을 도출해 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계속 강경투쟁 일변도로 가게 될 경우, 노사정위의 정책협의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더군다나 양대노총은 하반기 제도개선투쟁에서 공통의 요구를 안고 있기 때문에 공동보조를 취할 가능성도 높은 상태다. 그 경우 노동계의 하반기 제도개선요구는 정책협의보다는 대중투쟁의 성격이 더 강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제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지금은 장고보다는 결단을 내리고 해결을 해야할 때다. 뭔가 이해 당사자들의 기대가 있을 때, 사태해결에 대한 열망이 있을 때 문제를 푸는 것이 더 비용이 적게드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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