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신보도지침' 논란이 한창이다.
방송 4사 노조는 이에 반발, 한나라당의 공개사과를 촉구하고 언론노조는
5일 한나라당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졌다.
한나라당과 방송사의 '신보도지침'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한 MBC 노조간부의 글을 싣는다.


정치권의 못된 버릇이 되살아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의 아들 이정연 씨 병역비리의혹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다수당의 지위를 이용한 방송장악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지난 8월부터 이른바 편파방송 대책특위 등을 통해 방송사에 대한 압력을 높여 왔다. 한나라당은 '특정인'의 얼굴사진을 방송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한편 방송내용을 문제삼으며 MBC사장을 국회에 출석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구시대적인 요구가 통할 리 만무하다.

■ 대선을 앞둔 다수당의 코미디

한나라당은 이정연 씨에 대한 보도가 그래도 계속 나가자 군사독재정권 시절에서나 있었던 방송탄압을 노골화했다. 급기야 지난달 27일 MBC를 비롯한 방송 4사에는 이른바 '협조공문'이 한 장 날아들었다. 이정연 씨 보도에서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란 점을 말하지 말고 이정연 씨의 얼굴을 내지 말라는 황당한 요구였다. 신 보도지침이었다. 한나라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날에는 MBC를 표적으로 한 감사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52개 기관이 새로 국감대상이 되지만 MBC를 국정감사하고 보도에 간섭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적 입법임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공당이 그것도 원내 제1당이 한 개인의 비리의혹을 덮기 위해 국민이 부여한 다수당의 지위를 남용하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이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 다수당의 왜곡된 언론관이다. 과거 군사정권 당시 한나라당의 뿌리였던 민정당과 민자당이 자행했던 방송장악을 한나라당이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다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수많은 방송인들이 파업과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나마 이룬 방송민주화가 다시 훼손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 합법을 가장한 보도통제

이번 경우에서 보듯이 정치권은 군사정권시절의 밀실을 통한 언론탄압과는 달리 이제는 제도와 합법을 가장해 보도통제를 하려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MBC의 위상을 갖고 농단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이정연 씨 병역비리의혹 보도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MBC를 민영화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던 한나라당이 병역비리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이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자 이번에는 MBC를 언론 길들이기의 표적으로 삼아 국정감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나라당의 방송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감사원법 개정시도는 한나라당이 왜 MBC를 민영화하겠다고 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말 안 듣는 MBC를 만만한 재벌에게 넘겨 순치시키겠다는 계산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방송정책의 진정한 일관성은 방송을 장악해 정치에 이용하겠다는 줄기찬 의지뿐이다. 따라서 정책의 내용에 일관성이 없는 가는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 국민의 방송, 노동자가 지켜야

한나라당의 방송장악시도에 대한 MBC 노동자들의 결의는 단호하고도 비장하다.

또다시 수치스러웠던 예속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방송사의 위상을 갖고 보도내용을 통제하려는 어떤 시도도 강력하게 맞서 싸우는 길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번 신 보도지침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다수당 한나라당의 언론탄압에 맞서 이기기 위해서는 양심적인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노동자,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투쟁해야 한다. 방송은 국민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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