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단협 결렬 등으로 70여일째 파업 중인 가톨릭중앙의료원(CMC) 강남성모병원의 한 조합원이 파업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바라면서 김수환 추기경에게 띄우는 편지글을 보내왔다. ]

† 찬미 예수님! 추기경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성모병원에서 9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효숙(사베리나)입니다.

평소 존경하는 추기경님께 이 글을 드리기 위해 몇 번이나 망설이고 기도하며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저는 지금 성모병원 노조원이기보다 천주교 신자로서 추기경님께 간절한 도움을 청하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오랜기간 근무하면서 성모병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보람으로, 부족하지만 늘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기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노조가 무엇인지 파업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그저 막연하게 우리가 말 못하는 어려움을 노조협상으로 해결하여 조금씩 근무 환경이 나아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중앙의료원 노조의 파업이 77일째를 지나면서 저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열심히 일했던 우리 가톨릭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존경하올 추기경님! 노조는 파업을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파업 전 12차례에 걸친 교섭에서 의료원은 한번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의료원은 파업을 막으려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파업을 유도하였습니다. 직권중재라는 악법을 도구로 삼아 야비하게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이미 예고한 파업 전날 3개 성모병원 조합원 1,300명이 강남성모병원 로비에 모여들자 "조합원들이 병원 로비에 모여 있으면 교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퇴근해 버렸습니다. "파업에 돌입하기 전에 밤을 새워서라도 교섭을 하여 타결하자"는 노조의 간곡한 애원를 묵살한 채 말입니다.

추기경님! 참으로 슬픈 것은 노조를 탄압하여 굴복시키려는 일부 중간관리자들로 인하여 의료원장 신부님을 비롯한 3개 병원 신부님들이 사제로서의 권위를 잃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모병원의 몇몇 사악한 관리자들은 신부님의 눈과 귀를 가리고 비가톨릭적이고 악랄한 노조 탄압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그것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비신자들이 신부님은 물론 우리 가톨릭 전체를 싸잡아 비하시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가슴을 에이는 듯한 슬픔을 느낍니다.

성모병원은 지금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고 하신 예수님을 배반하고 가톨릭의 이념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각있는 국민과 신자들로부터도 '가톨릭 이념을 내팽개친 노조탄압 병원'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합원을 갈라놓기 위해 이간질하고, 회유와 협박, 징계 해고, 공권력 투입, 고소, 체포영장 발부, 무노동 무임금 적용, 손해배상청구에다 가압류까지…. 정말이지 악덕자본가들이 노조를 탄압할 때 써먹던 탄압수법들을 모조리 동원하였습니다. 설마 이러한 천인공노할 행위들을 의료원장님을 비롯한 신부님들께서 사주 하셨다고는 결코 믿지 않습니다.

'대문을 열어 놓으면 도둑이 들지만, 마음을 열어 놓으면 인간관계가 두터워진다'는 추기경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일 보다 관계성이 우선할 때 모든 매듭은 풀릴 것이라는 말씀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의료원이 노조을 동반자로 생각하고 대화에 응한다면 반드시 풀릴 수 있는 매듭이라는 말씀입니다.

존경하올 추기경님! 부디 청원컨대 사악한 관리자들을 배제하고 병원 신부님들과 저희들 대표가 추기경님과 함께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추기경님 앞에서 고해성사 보는 마음으로 추호도 거짓됨 없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으로 감싸안는다면 깨진 쪽박이라도 잘 꿰매어, 꿰맨 자리는 남아있더라도 다시는 물이 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추기경님 부디 도와주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2002년 8월 8일 강남성모병원 김효숙(사베리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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