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상의회장 노동장관에 공개서한  보기

정부가 주5일 근무제 입법을 강행하려는 데 대해 재계가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1일 언론을 통해 방용석 노동부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국제기준에 맞는 근로시간제 도입을 촉구했다.

박 회장은 서한에서 "정부가 노동계 주장에 밀려 기업 현실과 국제기준에 크게 어긋나는 내용을 제시한다면 경제 시계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회장은 "현행 공휴일 제도를 그대로 두고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 휴일이 26일이나 늘어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휴일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된다"며 "노는 제도를 국제기준으로 하려면 일하는 제도 역시 국제기준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최근 은행권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대해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한 파행운영'이라고 규정하고 "은행 노사간 합의안이 주5일 근무제 기준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또 정부가 연월차 수당에 대해 임금보전 대상이 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데 대해 "근로시간 단축 비용을 전적으로 기업이 부담하도록 하는 조치"라며 "이런 상황에서 과연 경쟁력을 유지하며 수익을 낼 기업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월차휴가와 생리휴가 제도에 대해서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라고 비판하고 하계특별휴가 등 난마처럼 얽혀 있는 불합리한 휴가관행을 쇄신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주5일 근무제 도입은 기업 처지에서는 휴일이 얼마나 늘어나느냐에 관한 문제며 당연히 공휴일수가 적정한지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며 "주5일 근무제를 논의할 때 공휴일 조정 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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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상의회장 노동장관에 공개서한


방용석 노동부 장관님.


2년여를 끌어오던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노사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끝내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지켜보면서 이번에야말로 국제기준에 못미치는 근로시간제도를 정비하고 불합리한 노동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협상 타결을 기다리다 결렬소식을 듣고 애타는 심정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지난 7월 초 63개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이 함께 한 자리에서도 이번만큼은 반드시 국제기준에 맞게 관련제도가 고쳐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한데 모여졌습니다.

이제 노사합의는 무산되고 정부 입법으로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지요. 그러나 야당에서 노사합의 없는 밀어붙이기식 입법에 반대하고 있어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전망이 불투명합니다.

설령 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해도 이번 정부 입법안은 향후 주40시간 근무제 논의의 또 다른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큽니다.

노동법이 어떤 법입니까? 항간에는 헌법보다 더 고치기 어려운 법이 노동법이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노동법이 근로조건의 최저 기준을 규정한 법률이기 때문에 첫 단추가 중요합니다.

지난 7월부터는 은행들이 토요일에 집단적으로 휴가를 사용하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파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반 제조기업에서는 전혀 참고조차 될 수 없는 은행 노사의 합의안이 주40시간 근무제의 또 다른 기준이 되어 산업계로 확산되지나 않을까 여간 우려되는 것이 아닙니다.

법 개정없이 은행과 같은 방식으로 주5일 근무제를 하게 되면 장시간노동이 관행화되어 있던 과거 개발연대에 근로자보호를 위해 도입된 불합리한 제도들은 하나도 고치지 못하고 휴일만 늘어나는 꼴이 됩니다. 노는 제도를 국제기준으로 하려면 일하는 제도 역시 국제기준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장관님께서는 한때 노동운동에 투신하시는 등 근로자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행정을 총책임지고 계시는 국무위원으로서 공정한 법 집행에 관한 의지를 보여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내 많은 기업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고, 외국기업 또한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그 이면에는 비합리적인 근로기준제도와 관행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번에 주40시간 근무제를 추진하면서 노동계 주장에 밀려 기업 현실에는 물론 국제기준에 크게 벗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는 경제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지난번 주40시간 근무제에 관한 막바지 협상에서 연월차수당도 임금보전 대상에 포함된다는 정부의 유권해석을 들고 나온 그 뜻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명목상으로는 불합리한 휴가제도를 없앤다고 해놓고선 돈으로 다 보상해 주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기업들이 여유가 있다면야 보상해 주라고 정부가 권하지 않아도 보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으로 우리 기업들이 휴일은 휴일대로 보장해 주면서 수당은 수당대로 보전해 줄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원가구조를 개선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서 경영성과를 높이는 가운데 수익이 창출됩니다. 근로시간 단축의 비용을 전적으로 기업이 부담하게 한다면 과연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현 제도를 가지고 주5일 근무제를 하게 되면 휴일이 26일이나 증가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휴일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됩니다. 소득 수준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데 가뜩이나 많은 휴일 수는 더 늘어난다고 하니 노동자야말로 신이 나겠지만 이런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기업은 경쟁력 저하와 국가경제의 성장잠재력 누수 등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월차휴가나 유급생리휴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입니다. 사용자들이 폐지를 주장하는 생리휴가제도는 이미 지난해 6월 출산휴가를 90일로 확대하는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국회 차원에서도 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수많은 논의를 통해 제시된 내용이 생리휴가를 폐지한 것도 아니고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무급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니 이것을 제도 개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노사정 기본 합의문에서 임금보전과 함께 국제기준에 맞는 휴일ㆍ휴가제도의 개선에 관해서도 이미 합의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임금보전에 관한 사항은 협상의 판을 깨뜨려도 좋을 만큼 중요한 것이고, 휴일ㆍ휴가제도 개선에 관한 사항은 나 몰라라 해도 좋다는 것인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노동행정을 진두지휘하시면서 난마처럼 얽혀 있는 우리의 약정휴가 관행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경조사휴가, 하계 특별휴가 등 불합리한 휴가 관행을 쇄신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돼야 합니다.

물론 약정휴가는 개별기업 노사관계에서 성립되는 사항이기 때문에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강변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희한한 약정휴가 관행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원인을 캐보면 정부가 방관자로 남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점을 알 수있습니다.

과거 정부의 실질적 영향에 있던 은행권과 정부투자기관들이 근로자들에게 갖은 명목의 휴가를 주는 데 앞장서온 결과 오늘날과 같은 휴가제도의 난맥상을 불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약정휴가문제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라면서 강 건너 불 구경하듯팔짱끼고 있는 것이 과연 정부의 합당한 처사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또 공휴일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주5일 근무를 하는 선진국은 공휴일이 10일 안팎에 불과한데 우리는 무려 17일에 달해 이 부분에 대한손질도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주40시간 근무제 도입은 기업에 있어 당장 휴일이 얼마나 증가하느냐에 관한 문제며 당연히 공휴일수가 적정한지 검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40시간 근무제를 논의할 때 공휴일을 조정하는 문제도 같이 논의해야 마땅합니다.

그간 주40시간 근무제 도입을 위한 허다한 논의를 통해 노사 입장이 어떠한지, 제도 개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방향이 서있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근로기준의 정립이라는 대원칙은 절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근로시간 단축의 대의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현실 여건에서 기업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이내에서 그리고 기업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는 방법으로 추진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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