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이란 뜨거운 함성이 전국에 울려 퍼지던 6월, 우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비보를 연달아 들었습니다.

6월 13일엔 미군 장갑차가 꽃다운 14살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 양을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6월 28일엔 서해해서
남북 해군이 교전을 벌여 우리측 장병 4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확인되진않았지만, 북측병사의 사상자도 상당했을 것이란 추측기사도 읽었습니다.

이들의 싸늘한 주검 앞에 삼가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하며, 명복을 빕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을 유가족과 친지들에게 뭐라 위로할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장원 무학여고 교사

월드컵 승리의 연호 속에 이들의 비보를 접하면서, 대한민국의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장갑차 압사 여중생 사건에 대해 주한미군은 공무수행 중 일어난 사고라며, 죄 없음을 주장하고 있고, 사건 재판권이 미군에게 있다면서 범인 인도를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처참한 죽음 앞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미군에게 분노를 느꼈습니다.

제 나라 국민을 죽인 미군을 제 나라 법정에 세울 힘조차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국민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언론에 대해서 어느 나라 언론인가 하는 분노를 느껴야 했습니다.

98년 서해교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북측 병사 30여명이 사망했다는데, 우리 언론은 그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 한마디 없이 승리의 환호로 도배를 했었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보았습니다. 98년 북의 동포들은 어땠을까? 그들도 그 때 남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에 불타지 않았을까. 그리고 2002년 지금, 98년 우리가 그랬듯이 축배를 들며 환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압사한 여중생도, 서해에서 횡사한 병사들도 우리의 제자였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다만 그들은 힘없어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동포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리고 동포인 적에게 이기기 위해 외국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있는 서글픈 조국에 태어난 죄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답답함에 무기력의 울분을 삼키고 있을 때, 나를 일깨우는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7월 4일 경북의 교사들이 6월의 두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평화선언'을 감행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다른 지역 교사들의 선언도 뒤따랐습니다.

나도 작은 용기를 내어 기말고사를 마치고, 영화보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에게 여중생 사건 관련 비디오를 틀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의 관심과 분노가 대단히 높음을 느끼면서, 늦게나마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보여준 힘은 위대했습니다. 그들의 역동성과 민족애는 선배들인 우리들을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교실에서 거듭 확인하면서 6월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나의 작은 힘을 보태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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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병사의 비극적인 죽음은, 분단 속에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가정의 행복이 얼마나 쉽게 깨어질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머뭇거리는 우리들에게 화해와 평화의 길로 가라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달라고 울부짖는 몸부림입니다.

우리가 늘 마주하는 우리 아이들, 그들의 천진한 얼굴에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증오도 없습니다. 그들이 살아갈 내일의 조국은, 외국에 대해 떳떳하고 당당한 조국, 더 이상 젊은이들을 대결의 희생양으로 몰아넣지 않는 통일된 조국이어야 합니다.

아들에게 그런 떳떳하고 당당한 통일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작은 마음 하나 하나를 모아 가는 것이 6월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고 신효순, 심미선 양과 서해교전에 희생된 남북 병사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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