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미 10개 은행이 합병되었으며, 최근에는 금융지주회사 제도의 도입을 통한 은행 합병이 추진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둘러 싼 논쟁의 초점은 금융지주회사가 공적 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의 경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금융지주회사 형태는 산하의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형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직접 합병과는 차이가 있으나 지주회사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 『느슨한 형태의 합병』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또는 지주회사 형태의 합병을 촉진함으로써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은행산업을 조성하려는 정부의 정책은 어떤 이론적 실증적 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 OECD 국가들의 은행합병 규모는 1991-92년간 568억불에서 97-98년간에는 3,624억불로 6.4배 증가하였으며, 1997-98년간에는 은행산업 전체 자본금의 19%가 합병되었다.

특히 미국의 은행 수는 1990년 12,230개에서 1999년 말 현재 8,620개로 30%가 감소하였으며, 그 대부분은 다른 은행에 합병되었다. 그러면 은행산업에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합병이 성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은행 합병은 기술적 진보, 규제환경의 변화, 금융산업 전반의 초과공급 상태(over-banking)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컴퓨터 처리 능력의 확대등 기술적 진보는 금융서비스의 거래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서비스 공급 역량을 증대시켰다.

그 결과 금융기관은 보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보다 넓은 지역의 보다 많은 고객에게 낮은 비용으로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 졌다. 이것은 세계화와 규제 완화를 촉진하고 금융서비스의 초과공급을 심화 시킴으로써 국경과 업무영역을 넘어선 금융기관간의 경쟁을 증대시키고 있다.

은행 합병의 목적은 일반기업의 합병과 같이 기업의 가치 극대화에 있다. 합병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증대시키거나 자본수익율을 제고하거나 다른 금융기술을 취득하여 사업위험을 분산하는 효과를 거둠으로써 금융기업의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

합병을 통해 은행의 경영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 있다. 첫째, 은행간 합병인 경우, 규모의 경제(용어 해설 참조)를 확보함으로써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해 수익을 제고할 수 있다.

시장지배력을 단기간에 확대하는 방법은 합병이고, 합병후 중복 투입요소(점포나 인력)을 감축하고 정보통신 설비를 단일하여 서비스 단위당 평균비용을 낮춤으로써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은행간 전산 시스템이 다른 경우, 통합비용으로 인하여 합병 후 상당기간 오히려 비용이 증가할 수도 있다.

둘째, 이종금융기관간의 합병인 경우, 범위의 경제(용어 해설 참조)를 기대할 수 있다. 예로 은행과 보험회사가 합병하는 경우, 동일 점포와 정보통신망을 가지고 은행 고객과 보험고객들의 정보를 통합하여 활용함으로써 양 업종간의 교차판매(용어 해설)를 통해 비용 절감과 판매 증가 효과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업은 조직 문화와 같은 무형적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은행·증권·보험업을 겸업할 경우, 이질적인 사업문화간의 충돌로 인해 오히려 비용은 증대하고 수익은 낮아지는 비효율성(범위의 비경제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셋째, 규모의 경제성과 범위의 경제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경영 역량에 따라 발생하는 X-효율성의 차이가 큰 경우, 합병 유인이 있다. X-효율성이 높은 우량은행이 X-효율성이 낮은 부실은행을 합병하는 경우, 합병은행의 효율성을 제고함으로써 금융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은행 합병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는가? 실증 연구결과로는 미국의 경우 1980년대까지의 사례연구에서는 합병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통일된 결과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규제가 대폭 완화되고 노동시장이 유연해진 1990년대 자료에서는 은행 합병이 효율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거둔다는 실증결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1990년대에 이종 금융기관간의 합병이 크게 성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겸업화를 통한 범위의 경제성에 대해서는 증거가 미약한 반면에 인건비와 전산비용의 절감을 통한 규모의 경제성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의 연구 결과를 보면, 「99년 중 있었던 4개 은행 합병을 분석한 결과 합병은행들은 기대와는 달리 시장지배력과 경영효율성에 있어 비합병은행들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합병 당시수준과 비교할 때, 시장지배력은 약화되었으며, 총체적 경영효율성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 일단 은행들의 합병 효과는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 논문은 합병후 불과 1년의 성과를 평가하여 자료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은행 합병에 있어 구체적인 비젼과 경영 전략을 사전에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해 주고 있다.

최근 발표된 The Banker지의 세계 1000대 은행 순위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자산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은 111등으로 세계 최대은행인 도이취은행(Deutsche Bank)의 1/13에 불과하다. 또 자본금 규모(tier 1)로도 국내 1위인 국민은행은 125등으로 세계 제일 규모의 시티그룹(Citigroup)의 1/16에 불과하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한빛·조흥·외환·서울은행을 한 개의 금융지주회사로 통합하더라도 자산규모는 도이취은행의 1/ 5로 세계의 59위에 해당하고, 자본금 규모는 1/8로 세계의 74위에 해당한다. 세계의 11위인 우리나라 경제규모와 비교하여 금융기관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심각한 열세에 있다.

지주회사 형태의 합병이 과연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업종과 국경을 넘어선 세계적 금융대란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은행을 대형화하고 전략적 선택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 경제용어 해설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생산량을 증가할 때, 평균비용이 낮아지는(생산성이 높아지는) 현상으로 추가생산에 따라 발생하는 추가비용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 특화된 기업들(A, B)이 각자 특화된 상품(x, y)만을 생산하는 비용을 합한 총비용보다 이 상품들을 한 기업(Z)이 함께 결합생산하는 경우의 총비용이 낮은 현상을 말한다. 그 이유는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로 설명된다.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 이질적 상품의 통합생산에서 공동 투입 요소의 절감이나 상호 보완작용 등을 통해 동일투입물로 분리생산할 경우보다 더 큰 성과가 나타나는 현상.

예로 서로 역할을 나누어 공동작업을 하면, 협동의 상승작용을 통해 각자 혼자가 거둘 수 있는 성과보다 휠씬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교차판매(cross selling) 이종 기업들이 고객정보를 공유하는 경우, 상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득의 고객정보를 활용하여 서로 교차하여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말함. X-효율성(X-efficiency) 비용을 최적수준으로 통제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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