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좋은 점이라면…
정작 우리가 아프고 힘들 때 특히 환자들 앞에서 절대로 아프지도 않는
'철인'이 돼야 한다는 점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백의의 천사'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

병원노동자들은 병원의 깨끗한 환경, '의료인이니까 스스로 건강을 돌볼 것'이라는 인식으로 그 동안 건강과 안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는 등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물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병원노동자들이 스스로 묵인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병원노동자 10명 중 6명이 요통 등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병원에 무수히 많은 '유해' 물질로 '백의의 천사'들이 점차 병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 "병원 환경이 병원노동자 산재의 주범"
중환자실에서 1년 3개월째 일하고 있는 강아무개 간호사는 두 시간에 한번 환자의 자세를 변경시키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고 '힘'을 모은다. 으라차차, 더운 여름에는 땀이 금방 베어 환자 살에 염증이 날 수 있어 더욱 신경을 써야한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반복되는 일. 중환자실 환자는 20∼22명인데 간호사는 수간호사, 책임간호사를 포함해 각 교대근무당 4명. 평균 50kg 이상의 환자를 혼자서 움직이려면 아무리 건강한 강씨라도 솔직히 지친다. 수시로 밀려오는 환자들. 이들을 이동시키는 것도 강씨의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이다.

"요즘 어깨, 팔목, 허리… 왜 이렇게 쿡쿡 쑤시지?
매일 배식 운반을 하는 급식과 이아무개 아주머니도 어깨, 손목이 아프다고 하던데…
어휴∼ 정말 아프다."

임상병리과에서 일하는 김씨는 문뜩 문뜩 겁이 날 때가 있다. 얼마 전 병원노동자 실태 조사 때문에 코 속을 면봉으로 훑어 세균배양을 했더니 별별 균이 다 나왔다. 그러고 보니 보이지 않지만 손, 몸, 공기 중에 세균이 항상 존재하는 곳이 바로 병원이다. 김씨는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유해물질이 있는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이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병에 걸려 병원에 오는 환자들.

"도대체 병원에는 어떤 유해물질이 있고, 얼마나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나는 과연 안전한 것인가? 내가 간염 된다면 환자도 위험한 건데" '환자의 혈액, 체액, 마취제, 항암제, 발암물질이 있는 엑스레이, 각종 소독제…' 얼마 전 전염성폐결핵에 걸려 쉬고 있는 외과 중환자실 이아무개 간호사의 일이 김씨는 계속 맘에 남는다.

'아야!' 또 찔렸다. 익숙할 때도 됐는데 박아무개 간호사는 주사바늘에 또 찔리고 말았다. 그냥 개인 부주의로 넘겨야 하나? 요즘 박 간호사는 나이트(밤샘근무)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다. 10년째 간호사 생활이지만 3교대는 여전히 어려운 수학문제 마냥 힘들다. 부쩍 심해진 편두통, 수면장애, 소화성 궤양 등 3교대뿐만 아니라 늘 아픈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이곳. 병원은 가뜩이나 모자란 인력인데 또 구조조정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곳곳에서 늘고 있다. 솔직히 불안하다. 아까 먹은 저녁이 또 소화가 안 된다.

■ '산재' 가깝고도 먼 이름…은폐가 가장 큰 문제
"산재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병원도 인식이 부족해 (산재인정이)별 피해가 없는데도 공상 처리, 제한적인 연월차, 병가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죠. 산재 당사자도 뭔가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눈치를 보는 것이 병원 산재의 현실입니다."

보건의료노조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34개 병원지부에서 최근 3년간 산재발생 현황은 총 109건. 골절, 인대파열 등 사고성이 34건, 결핵 24건, 요추 및 경추 염좌나 추간판탈출증 24건 등이다. 나머지 병원(사립대병원 포함)들, 가려져 있는 노동자들까지 감안하면 산재 발생 건은 파악된 수의 몇 배를 상위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병원 중에서도 산재적용이 안되고 사학연금공단에서 직무상 요양으로 처리하고 있는 사립대학교병원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연금공단이)근로복지공단처럼 전문적이지 못하고 비전문적이라 직무상 요양을 인정받기는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신청 후 소요되는 기간이 수개월, 10여 개나 되는 서류 등 재해자들이 지레 기가 질릴 정도로 절차도 복잡하죠. 공단의 '연금'과 관련된 문제라 미묘한 부분도 많습니다. 산재보험이 적용 받도록 법개정이 돼야 합니다."

산재를 인정받기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병원노동자의 건강실태 부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은폐'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93년 자체 조사를 한 것과, 올해 노조와 노동환경연구소의 조사를 빼면 병원노동자에 대한 건강실태, 병원환경 조사는 전무한 상태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원인인지 분석할만한 근거가 없는 거죠.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산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말입니다." 노조 최경숙 노동안전보건국장의 말이다. 현 실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 보니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할 관리, 예방은 '먼 나라 얘기'가 돼 버린다는 것이 최 국장의 지적이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 "병원사업장에 맞는 기준을 마련해야"
"우선적으로 실태조사가 필요합니다. 또 현재까지 산업안전 기준이 대부분 제조업중심이라서 병원의 특수성에 따른 병원감염, 유해물질에 대한 직업병 등 거의 산재인정이 안되고 있습니다. 병원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한 산업안전보건법, 산재인정 기준을 별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노동자의 건강실태의 공론화를 위해 지난 4월 공청회를 열었다.

그 결과물로 노동부는 7∼9월까지 440개 병원 사업장에 대한 일제 점검에 들어간다. 처음 있는 일이다. "병원 사용자들은 그렇다 치더라고 정부가 병원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점검을 올해 처음 시작한다니 현 '수준'을 아시겠죠?" 노조는 이것만이라도 잘 진행되기 바란다며 보건의료노조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병원노동자 스스로가 건강불감증에서 벗어나 노동안전보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노동안전보건은 복지적 개념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권'입니다."

노조는 올 8월 말 노동안전보건과 관련 교육을 실시한다. 병원노동자의 건강실태에 대한 공론화만큼이나 노동자들의 의식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 등이 '살얼음'이 아닌 단단한 얼음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노조 최경숙 노동안전보건국장의 고민은 깊다.

"각 지부별 산업안전 부서, 주체까지 마련이 돼야 합니다. 꾸준히 일상 속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죠."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중략…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이아무개 간호사는 병든 자신을 돌이켜 보며 책상 한 귀퉁이에 걸려있는 '나이팅게일 선서'가 오늘 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진다.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 그럼, 병원노동자의 안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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