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에 있었던 제3회 4대 지방선거는 역대 지방선거 중 가중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한나라당의 압승, 민주당의 완패, 민주노동당의 제3당 부상'으로 끝났다.

우선, 투표율을 보면 48.9%를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지난 91년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가장 낮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렇게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은 무엇보다도 김대중 정부 하에서 만연된 부정부패, 김대통령과 집권당의 무능과 독선, 여야후보간 인식공격성 폭로전으로 일관된 선거운동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올 들어 터져 나온 김대통령 가족의 비리사건과 이에 대한 노무현 대선후보의 미온적인 대응방식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로 하여금 지지할 정당·후보를 상실케 만듦으로써 투표율을 낮추는데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가 아이엠에프 위기로부터 벗어나 지속적인 성장으로 돌아 선 것도 투표율을 낮추게 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추측된다. 잘 알다시피, 우리 경제는 2000년경부터 아이엠에프 위기로부터 완전히 탈출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실업률도 낮게 유지됨으로써 대다수 국민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인 경제문제가 이번 선거에서는 전혀 이슈로 등장하지 못했다.

실제로 '먹고사는데 큰 문제도 없는데 구태의연한 후보, 잘 모르는 후보들 중에서 지지할 사람을 정해야 하는 귀찮음을 왜 해야 하나'하는 분위기는 노동자 밀집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지방선거의 낮은 투표율은 '풍요로운 경제'로 인한 정치무관심 증대와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로 인한 불신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낮은 투표율이 기록한 가운데 실시된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은 승리자는 한나라당이다. 16개 광역시장·도지사 자리 가운데 11개, 232개 시장·군수·구청장 자리 가운데 140개, 682석 광역시의원·도의원 가운데 467석을 차지함으로써, 호남지역과 일부 충청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지방행정부와 지방의회를 완전히 장악, 지방정부를 단독으로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반면,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은 4개 광역단체장, 44개 기초단체장, 143석의 광역의원을 확보함으로써 한나라당에 비해 '1/3 정당'으로 위축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수도권 지역에서 광역단체장 세자리를 한나라당에게 모두 내주었고,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자리도 1/8∼1/6 정도 차지하는데 그침으로써 평민당 시절의 '명실상부한 호남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주당 참패-정치부패와 노무현후보의 미온적인 대응이 원인
    민주노동당포함 진보세력10%대 지지-자민련등 수구세력 퇴조와대비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김대통령의 세 아들을 포함한 권력형 비리와, 이에 대한 민주당의 미온적인 대응방식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김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부터 무능, 비리, 독선으로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했으나 작년 10월에 있었던 재·보선의 참패를 계기로 당개혁작업을 과감히 추진함으로써 지지도를 상당히 회복하였다. 특히 제16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함에 있어서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함으로써 대선후보로 선출된 노무현씨의 지지도는 물론 당에 대한 지지도를 크게 회복하였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즈음한 시기에 김대통령의 세 아들 비리사건이 터지고, 이에 대한 김대통령 자신은 물론 노무현체제 하의 민주당조차도 분명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여야로부터 중립적인 유권자층은 물론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도 외면을 받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김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선거전에 십분 활용하였고, 그 성과를 얻은 것이다. 즉, 김대통령의 권력형 비리와 이에 대한 노무현 대선후보의 미온적인 대응, 그리고 한나라당의 이에 대한 심판론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집단은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를 상실하게 만든 반면, 한나라당 지지집단은 선거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자민련을 포함한 수구세력은 위축된 반면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세력은 크게 약진했다는 것이다. 14명의 현역 국회의원을 가지고 있는 자민련은 이번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3명, 기초단체장 51명, 비례대표를 포함한 광역의원 88명의 후보를 내서 광역단체장 1명, 기초단체장 16명, 광역의원 33명을 당선시켰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을 포함한 진보세력은 광역단체장 10명, 기초단체장 12명, 비례대표를 포함한 광역의원 114명의 후보를 낸 가운데, 기초단체장 2명, 광역의원 11명을 당선시켰다. 이러한 진보세력의 성과는 당선자수만을 놓고 보면 자민련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 내용 특히 정당지지율을 보면 자민련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이번 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광역시도 비례대표제에서 민주노동당이 8.1%, 사회당이 1.6%를 획득, 진보정치세력은 모두 10%에 가까운 득표를 하였다. 그러나, 자민련은 정당 비례대표투표에서 6.5%를 얻었으며, 박근혜의 미래연합(1.1%)을 포함하더라도 수구세력의 득표율은 진보정치세력에 크게 뒤진다.

물론, 여기에 한국노총과 시민단체(예, 녹색평화당)들을 포함시키면, '진보세력'의 기반은 수구세력에 비해 크게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노총은 이번 지방선거에 기초단체장후보 6명을 포함, 모두 79명의 후보를 내어 기초단체장 3명, 광역의원 16명 등 모두 39명을 당선시켰으며, 녹색평화당은 12명의 후보를 내어 당선자는 없으나 1.3%의 정당득표율을 확보하였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자민련을 대체하는 '제3당'으로 부상하게 되었지만, 명실상부한 제3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외부적 제약과 내부문제점을 극복해야할 것이다.

우선, 한나라당이 울산에서 그랬듯이, 진보세력이 기성정당에 위협적인 도전세력으로 부상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색깔공세, 집단이기주의공세 등 구태의연한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공세(사회당 지지율을 상기할 것)를 적극 동원하려는 것에 대비해야할 것이다.

다음, 정당득표율이 8%가 넘는다고 하지만, 이러한 지지율이 국회의원선거에서 그대로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국회의원선거의 투표율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러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이, 국민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중도우파에 몰려 있고, 이들이 이번 선거에 대거 불참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정당지지율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적극 실천해야할 것이다.

     울산패배, 지배세력의 총공세 결과
     민주노동당 8%지지율-총선에서 재현될지 미지수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특징은 이번 선거의 결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과거에 비해 후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충청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광역단체장을 차지한 정당과 광역의회 의석 과반수 이상 차지한 정당이 일치한다. 한 정당이 행정부 수반과 의회를 동시에 장악할 경우 집권당의 전횡 등 그 폐해는 심각하다.

더구나 대다수 정치인이나 일반국민이 지방자치를 중앙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사고하고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에 대한 심판으로 여기는 풍토에서 하나의 정당이 지방정부의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할 경우 지방정치에 중앙정치의 논리나 이익을 부과하려는 경향은 물론 지역사회의 토호세력과의 밀착도 막기가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전국의 지방정부가 호남과 비호남으로 구분되어 각 지역에서 하나의 정당이 의회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하고 있어, 즉 비호남지역은 한나라당이, 호남지역은 민주당이 지방정부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호남-비호남 대립이 지금보다 격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에서 완승한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자당이 장악한 지방정부로 하여금 선심성 행정과 마구잡이 지역개발 등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민주당은 주요 패인을 당쇄신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파악하고 김대통령·동교동계를 연상시키는 모든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것을 포함한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려고 할 것이나, 당내 보수세력으로부터의 저항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민주당은 내분에 빠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절대다수당으로 되어 있는 특히 영남지역의 광역의회에서 최소 1명씩 진출해 있는 민주노동당의 주민대표들은 '유일한 야당'으로서 지역주민의 진정한 이익을 대변하고 지역대립의 격화를 막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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