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이 어떤 식으로 결정하든 따르겠다고 했다.
14개월만에 출소한 한통계약직노조 홍준표 위원장
" 싸워온 과정만으로도 승리한 것 "
- 기자명 이정희 워팅보이스 취
- 입력 2002.05.3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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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 500일을 넘어가면서 조합원들이 지쳐있고,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른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제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했다.
(합의안이) 조합원들에게 많이 불만족스럽겠지만,
다시 시작하는 의미로,
14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5월18일 석가탄신일 특사로 출소한 한국통신계약직 홍준표 위원장(41).
다소 담담한 표정으로 '517일 파업 마무리' 결정에 대한 소감을 말한다.
"말이 노숙투쟁이지, 영하 20도 가까이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에 시멘트 바닥에서 생활하기 너무 어려웠다. 눈은 또 왜 그렇게 많이 내리는지… 정규직은 우리와 정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대투쟁에 나서지 않았고, 정규직 노조와 우리 노조가 함께 소속돼 있는 공공연맹과 민주노총 지원 하에 연대를 모색해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회사와의 교섭에서는 어느 누구도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노조가 선택한 것은 극한투쟁. 회사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는 투쟁전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파업의 끝이 보이지 않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3.29 목동 전화국 점거. 하지만 노조는 그 전술을 쓰고서도 파업의 끝을 보지 못했다.
"감옥 있을 때 얘기이지만, 지난해 여름과 가을쯤.
조직적 퇴각론이나 종업원지주제 얘기가 나왔다. 내부적으로 어떤 논란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투쟁 깃발을 내리게 된 데 후회하진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투쟁과정 속에서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이다."
당시 논란의 핵심은 현재 남아있는 계약직 노동자들이 한국통신으로부터 안정적인 도급물량을 받는 도급회사를 설립하면서 고용을 보장받되, 현재 '계약직노조'를 (가칭)'한국통신비정규직노조'로 전환, 한국통신과 직간접적으로 엮여있는 회사의 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구심체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정규직화' 요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반발했고, 한국통신 역시 종업원지주회사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아 결과적으로 폐기됐다.
다만, 홍 위원장이 아쉬움을 갖고 있는 순간은 지난해 1월 중순, 한국통신 이상철 사장과 독대를 했을 때. 당시 이 사장은 △ 남아있는 계약직을 전원 도급으로 고용을 보장해 주고 △ 인력감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서 신규채용을 할 때 현재 계약직들을 우선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어쩌면 지금의 투쟁 결과가 당시 오가던 내용보다 못한 결과로 보여진다. 그 때 좀더 심사숙고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3.29 목동전화국 점거 들어가기 전에 힘들어하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투쟁 방향을 끝장내기 식으로 끌고 간 데 대해 후회랄까, 아쉬움은 있다."
그런 홍 위원장이 보는 파업 517일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이라든가, 모든 비정규직의 아픔을 대변했다고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스스로의 아픔을 표출하는 투쟁을 했다는 데 자신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싸워온 과정만으로도 승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났던 정부와 한국통신의 구조조정의 문제점, 비정규직들에 대한 차별 등은
이제 다시 시작할 투쟁 속에서 해결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