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부터 민주노총의 시기집중 파업이 시작됐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전국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등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용자측이 각 노조와 산별교섭을 하기로 합의한다면 파업에 돌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사용자측에서는 같은 업종에서도 사업장별 근로조건이나 임금수준 등의 격차가 커 산별교섭은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노동계는 예정대로 파업에 돌입하였다.

그러면 노동계의 산별교섭 요구가 월드컵을 담보로 하여 관철시켜야 할 만큼 필요하고 절박한 것이었을까? 이에 대한 몇가지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 사용자에게 교섭구조 강요할 수 없어
먼저 현행법상의 노동조합 조직형태와 교섭구조에 대해서 살펴보자. 2006년까지 기업단위의 복수노조 설립이 제한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노조설립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기업별로 노조를 조직할 것인지 산업별로 설립할 것인지 근로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문제다. 민주노총 소속 연맹중 금속과 병원 등에서는 이미 산별노조로 전환하였고 기타 연맹에서도 2006년까지 산별로 전환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형태가 산별체제로 전환하였다고 해서 교섭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에서는 교섭과 체결 주체를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는 기업별로 교섭을 할 수 있고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와 필요에 따라 사용자단체를 구성하여 산업별로 교섭을 할 수도 있다. 근로자에게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를 강요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용자에게도 교섭구조를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 산별교섭 정착 앞서 몇가지 전제 필요
물론 노동조합이 산별로 전환되었으므로 교섭비용을 절감하고 임금격차 등 근로조건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교섭구조도 산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교섭구조가 산별로 전환·정착되기 위해서는 노사정간에 몇가지 사항에 대하여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산별노조와 기업별 지부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노조가 산별체제로 전환되었다 하더라도 산별노조와 기업별 지부와의 관계는 연맹과 단위노조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별 지부는 노조와 동일한 조직과 전임의 노조집행간부로 구성되어 있고 교섭권과 체결권이 보장되고 있다. 법원에서도 기업별 지부에 대해 교섭권을 인정하고 있다.

사업장마다 근로조건과 임금수준·구조 등이 상이한 업종에서 산별교섭을 통해 공통사항에 대한 기준협약을 체결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기업단위에서 사업장별로 구체적인 교섭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중의 교섭에 시달려야 하면서 상시적 파업의 개연성에 노출되는 문제가 있다며 반발할 것이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모든 노조가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서구선진국에서도 교섭구조의 집중하에서 탈피하여 개별 사업장에 맞는 방식으로 분권화하는 추세라고 한다.

결국, 산별교섭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산별교섭에 대한 노사간의 공감대 형성과 함께 산별과 기업단위에서 각각 무엇을 가지고 교섭을 할 것인지, 양 교섭에 파업권을 보장하여야 하는 것인지, 현재 기업별 지부의 역할과 기능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 등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2007년부터 시행되는 복수노조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산업현장에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경우 기업단위에서 제2·제3의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비하여 어떤 방법과 절차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는다.

미국에서는 조합원수가 과반수 이상인 노조만이 교섭권을 갖는다. 지난 99년부터 합법화된 교원노조는 조합원수에 비례하여 교섭위원을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어떠한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교섭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산별교섭에 대한 논의에 앞서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편 주5일근무제 도입 등과 같은 사항은 기업별 교섭을 통해서는 관철되기 어려우므로 산별교섭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개선사항에 대해서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대화의 틀을 거부하고 노사교섭과 파업을 통해 해결해 보겠다는 발상은 찬성하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의 산업현장에 적합한 교섭구조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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