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몸 새벽 긴줄 '난민' 방불 8일 새벽 동틀 무렵, 철문이 굳게 닫힌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옛 남부지원 건물앞은 2천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북적댔다.

철문 양쪽으로 500m이상 늘어선 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길어졌다. 누군가가 새치기라도 할라치면여기저기서 큰 소리가 터져나왔다. 다들 피로와 추위에 지친 모습이었다.

이들은 정부가 지난 3월 내놓은 `불법체류방지 종합대책'에 따라 자진신고를하기 위해 찾아온 불법체류 외국인들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오는 25일까지자진신고를 하게 하고, 미신고자들은 강제출국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가 집중된 수도권 지역의 신고장소가 서울 인천 안산의정부 등 4곳뿐인데다 접수인력도 모자라 26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불법체류외국인들은 이처럼 신고를 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사무소 앞에 돗자리를 깔고 차례를 기다리던 방글라데시인 다리코(29)는“어젯밤 8시부터 기다렸다”며 볼멘 소리를 했다. 중국동포 박명철(30)씨도“새벽 3시에 오니 벌써 1천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며 “오늘 신고를 마쳐야내일 일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오전 6시께, 인근 문래동감리교회 신도들이 나눠준 빵과 우유를 받아든 이들은길에서 허겁지겁 식사를 하며 허기를 달랬다. 오전 7시께, 경찰이 번호표를나눠주기 시작했다.

경찰은 “하루 6천여명의 외국인노동자들이 온다”며“하루종일 줄만 섰다 돌아가는 사람이 1천여명”이라고 말했다. 오전 7시30분께, 철문이 열렸다. 경찰은 먼저 들어간 300여명을 사무소 앞마당에 줄맞춰 쪼그려앉아기다리도록 통제했다. 이란인 하민(28)은 “마치 죄인 다루듯 해 기분 나쁘다”며섭섭해했다.

인근 상점들의 `바가지 상혼'도 이들을 괴롭힌다. 컵라면 2천원, 커피 1천원에서류를 대신 써주고 5천원씩 받는 사무소도 여럿 생겼다. 복사 1장에 500원씩 받자부동산, 학원, 알루미늄 가게까지 복사기를 갖춰놓고 이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있다.

인근 주민 조아무개(46·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씨는 “외국인노동자들이화장실이 없어 주택가 골목에 일을 보기도 한다”며 “정부는 월드컵때 오는부자나라 외국인들에게만 신경쓸 게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이동식화장실이라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문래동감리교회 유영설 목사는 “우리나라 사람이 신고를 한다면 이런 식으로 했겠느냐”며“재일동포의 지문날인을 두고 일본을 비난하는 우리나라가 외국인노동자들에게이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 관계자는 “인력부족으로 신고장소를 더 늘리지 못했다”며 “아침일찍부터 신고를 받고, 심사시간을 최소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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