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이 배일도 위원장의 글에 대한 반박을 보내왔다.
지난 4월8일 본지에 연구전문노조 박태주 지도위원이 배일도 위원장의 월드컵기간 무쟁의 선언을 비판한데 이어 4월12일자에 '불난집 화재원인을 놔두고 어찌 부채질만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라는 배일도 위원장의 박태주 지도위원에 대한 답신글에 이은 반박글이다.



두 분께서 주고받은 글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역시 선배활동가답게 논리가 명쾌하고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편, 오랫동안 선배님들이 해 오셨던 노동운동에 대해 막 시작하는 후배로서 두 분의 글을 읽고 느낀 저의 생각을 밝혀 볼까 합니다. 저의 글이 다소 표현이 거칠고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후배의 진심 어린 충정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나 말리는 시누이나 밉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본질은 '미운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누가 더 밉고 덜 밉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 차이를 가지고 다분히 주관적 감정이니 하는 것은 배위원장님이 쓰신 글대로 본질을 놔두고 변죽을 울리는 것에 불과 합니다. 며느리 입장에선 본질은 때리는 시어머니나 말리는 시누이 둘 다 '밉다'는 감정입니다.

해고자 복직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배위원장님 말대로 때리는 시어머니가 더 밉게 느껴진다고 해서 시어머니를 내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요. 백번 양보하여 설사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여 그랬다 하더라도 1만 조직을 이끄는 지하철노조의 수장이라면 미운 놈 떡 하나 줄 수 있는 배포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올챙이 적 시절을 망각한 개구리가 생각이 나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계급대립'은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입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임금노동자와 자본가로 나누고 있으며 '임금'을 매개로 대립적이면서도 상호의존적이기도 합니다.

임금노동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본가에게 고용되고 자본가는 이윤창출을 위해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상호의존적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임금은 내가 지불하는 비용이다. 따라서 적을수록 좋다(자본가)", "임금은 내가 벌어들이는 유일한 수입니다. 따라서 많을수록 좋다(노동자)", 그래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대립적 관계입니다.

이 대립적이면서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바로 노사관계입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노사관계를 놓고 "계급 대립적 시각이 문제니, 아니니"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물로 바로 보지 못하는 주관적 시각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이 객관적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배위원장님의 말대로 노동자의 승리를 위해 올바르게 활동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지요.

배위원장님!

발전노조 투쟁을 역사적 투쟁이며 노동자들 사이에 전설적인 투쟁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전무후무한 투쟁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럼 그 역사적인 투쟁에 배위원장님은 무엇을 하셨나요? 배위원장님 말대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셨나요? 부채질이 아니라 불난 집에 정권과 자본이 쥐어 준 기름을 가지고 들이부은 '용병'이 아니었습니까?

전쟁을 하다보면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군요.

노동3권은 이 땅을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기본입니다.

이 기본을 가지고 배위원장님이 전술적으로 활용한다면 정권과 자본은 그것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것입니다. 배위원장님이 말한 것은 평화선언이지만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의 투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기본을 저버린 어설픈 말장난은 속셈이 금방 들통나고 이용만 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싸움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는다"는 배위원장님의 주관적 의지가 아니라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양심과 자존심을 지키며 개인적인 사심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불난집은 수리할 수 없어서 새롭게 튼튼한 집을 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튼튼한 집을 어디다가 지을 생각이십니까? 불난 집을 버리고 새 터를 마련하실 요량이십니까?

저는 분명히 말하건데 불이 났다고 살던 집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 집을 수리하든지 그터에 새롭게 정말 튼튼한 집을 지을 생각입니다. 불난 집이 싫으면 혼자 떠나면 될 일입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 놓고 그 집을 버리고 새롭게 튼튼한 집을 짓겠다는 배위원장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배위원장님은 보수언론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배위원장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일도'라는 이름 석자는 정권과 자본, 언론의 희망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박태주 선배님!

지금 저는 정말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정 같이 못살겠거든 깨끗하게 헤어지면 그만 아닙니까?

행여 저의 이러한 생각이 본의 아니게 그 분의 활동에 누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다시 한번 선배활동가로서 넓은 가슴으로 저의 글을 후배활동가의 충정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02년 4월22일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승무지부 구로승무지회 조합원 백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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