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제목은 한수산님의 책이름에서 땄습니다.


민주노총 4.2 총파업이 급정거하던 전날 서울지하철노조 배일도 위원장을 비롯한 공공6개사 노조 위원장의 무쟁의 선언에 평소 배 위원장과 상당한 친분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박태주 박사가 배일도 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왔다. 배 위원장의 답신이 오면 그대로 싣는 것을 전제로 편집 없이 제목부터 내용까지 그대로 게재한다.

마치 도둑이라도 맞은 듯 발전노조의 파업을 그렇게 끝내고 이틀동안이나 일손을 잡지 못하다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이렇게 허탈감에 빠진 것은 민주노총이 시대정신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는 순간 민주노총은 이미 역사적 임무를 다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허탈감의 한켠에서는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절절하게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배위원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때문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하루 앞둔 지난 4월1일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비친 "월드컵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서울 지하철 등 서울시 산하 6개 노동조합은 파업을 벌이지 않겠다"는 배위원장의 모습은 놀라움이자 분노였습니다. 이것이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일이었다면 이튿날 실린, "노조는 계급대립적인 시각을 버려야 한다"는 신문인터뷰 기사는 그야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습니다. 3월말, 네 번째로 당선된 배위원장의 자신감이 이른바 공공노총에 대한 거침없는 비전제시에 이르러서는 아예 브레이크 없는 전차로 내닫고 있었습니다.

배위원장은 1999년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다시 나선이래 '노사 상생의 노동운동'을 외쳐왔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대화를 위한 제도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상황에서 노사화합이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실험이란 걸 수 차례에 걸쳐 지적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정책이 실종되고 투쟁이라는 구호만이 전면에 나서는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에서 배위원장의 실험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느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처럼 '아닌 밤중에 홍두께'로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발전노조의 파업은 임금 인상도 고용보장도 아닌, '값싼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을 지키고자 일어선 공공서비스 노조의 자기선언이었습니다. 전력의 공공성을 유지하려는 노동조합의 투쟁이 사회시민단체들의 가세로 사회적 의제로 바뀌면서 이는 발전회사의 매각을 넘어 정부의 민영화정책, 나아가 공공개혁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발전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말, 서울 지하철 노조는 행정자치부의 지침에 맞서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더랬습니다. 행자부의 지침이란 다름 아닌 '공공개혁'의 일부로서 임금인상률을 6% 이내로 제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파업도 지하철이 필수공익사업장인 이상현행법으로는 '불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배위원장에게 임금인상률을 강제하는 행자부지침은 파업의 대상이 되고 임금인상은 커녕 해고까지 불사하며 전력의 공공성을 지키고자 한 투쟁은 '공익을 볼모로 한 벼랑끝 전술'로 보입니까? 게다가 배위원장은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점잖게 충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무쟁의'를 선언하고 나선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로도 나타나지 않습니까? 노동조합이 대화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일망타진식으로 군사작전 펼치듯 노조를 몰아부쳤다는 것은 배위원장도 잘 알고 있는 바일 것입니다. 만일 지하철 공사를 민영화시키겠다고 정부가 나섰을 때, 그러면서 노동조합과의 교섭은 물론 온갖 사회적 논의를 거부했을 때 지하철 노조인들 파업이외의 다른 수단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까지도 배위원장은 '계급대립적 시각'이라고 매도하겠습니까? 더욱이 배위원장이 지하철 24시간 운행을 주장하면서 그것이 공공서비스를 개혁하는 길이라고 밝혔을 때 배위원장만이 공익을 독점해야 한다고 느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공노총'에 대해서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언젠가 배위원장의 말마따나 '공공연대의 발원지'인 공공부문 노동조합 대표자회의의 초대 상임대표를 맡기도 했습니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틀을 뛰어넘어 동일한 문제를 '정부'를 상대로 함께 해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3노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연대의 결과를 분열의 씨앗으로 만드는 일일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이 참에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언론들의 희망서린 낙관에도 불구하고 배위원장이 구상하는 제3노총은 역사적 정당성도, 자기 정체성도, 그리고 그것을 풀어낼 '투쟁전술'도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운동의 도도한 봄길에는 벚꽃도 사쿠라도 피어날 것입니다. 87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도 가깝게 노동운동판의 고락을 함께 해온 동지로서 흐드러진 벚꽃 속에서 사쿠라를 가려내는 아픔을 전합니다. 답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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