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연구원측으로부터 공기업 민영화 관련 각종 토론회 참여를 제한 당해 이목을 끌었던 박태주 박사가 발전민영화 관련 글을 본지에 보내와 전제합니다.

발전노조의 파업이 한 달을 넘기면서 발전민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이제 '뜨거운 감자'가 아니라 '끓는 보일러'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얼마전 김대중 대통령은 "발전노조 파업은 부당하며 불법"이라고 지적하며 "민영화 철회요구는 안된다"라며 쐐기를 박았다. 이 글을 대통령에게 쓰는 이유는 대통령의 이러한 말로 당사자격인 노동부장관이나 산업자원부장관은 '갓 높여쓴 로보트'가 되어버렸으며 노사정위원회조차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당사자는 대통령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의 발전회사 민영화 방침에 대해 대통령께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 다음과 같다.

■ 왜 이처럼 민영화 조기강행에 매달리는가?

첫 번째 질문은 한전이 '공기업중의 삼성'이라 불릴만큼 부실이 아니며 매각을 연기하더라도 전력수급체계에 당장 문제가 발생할 일도 아니라면 정부가 왜 이처럼 민영화의 조기강행에 매달리는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국제신인도의 유지'외에 정부의 속시원한 답변은 없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일개 노조의 요구에 밀릴 수 없다는 오기인가, 아니면 집권말기의 레임덕으로 연결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인가. 그도 아니라면 시장만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시장에 대한 '종교적 신념'인가?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거니와 들끓는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부담까지 감수하면서 정부가 이처럼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민영화 강행을 외치는 이유를 '솔직히' 필자는 알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부가 자산만도 3조원이 넘는 대규모 물량을, 그것도 임기말인 올해에, 팔 수 있을 것으로 믿기지도 않는 것이 또한 필자의 '솔직한' 느낌이다.

■ 왜 전력요금에 대해 가격상한제 실시를 내세우지 못하는가

두 번째 질문은 전력요금의 상승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왜 전력요금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실시한다고 내세우지 못하는가 하는 점이다. 전력의 민영화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정부는 주장하고 있지만 민영화의 경우 가격상한제를 실시한다는 것 이 차라리 세계적인 추세이다. 영국에서조차 송배전망 사용료뿐 아니라 시장에서 거래되는 도매전력요금까지 발전회사간의 담합을 막기 위해 일정기간 가격상한제를 실시하였다. 전력요금의 상승여부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는 방법은 정부가 향후의 요금규제체계를 가격상한제를 바탕으로 설계하겠다고 밝히는 일이다. 더욱이 요금체계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전소부터 매각하겠다는 것은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쓰는 일이나 진배없다. 어떻게 이윤을 남길지도 모르면서 민간자본이 수조원의 돈을 투자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근거로서는 이윤율(투자보수율)의 보장 이외에는 없을 것이며 이 또한 가격상승으로 이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할 것이다.

■ 발전업자간 담합에의한 캘리포니아 전력대란, 남의 나라 일일뿐인가?

세 번째는 전력공급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와 같은 전력대란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2000년 5월이래 캘리포니아의 전력요금은 평소의 MWh당 25∼30달러에서 여름의 피크기에는 175달러로 뛰었다가 수요가 감소하는 겨울에는 무려 385달러까지 솟구쳤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발전업자간의 담합으로 45,000 MW의 전력공급설비의 35%에 이르는 16,000만KW가 일제히 유지보수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물건너 남의 나라 일일뿐인가? 규제기관인 전기위원회조차 산업자원부 산하기관으로 정치적 독립성이 없을 뿐 더러 전문적인 역량조차 모자란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발전회사간의 담합을 막기란 애시당초 백년하청일 것이다. 전력공급에 대한 우려는 민간자본이 충분히 전력설비를 확충한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외국자본의 진출이 허용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가중된다. 영국의 예를 다시 들면 발전의 경우 설비확충의 필요가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정부는 황금주(golden share)를 보유함으로써 발전회사가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왔으며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정부의 매각방식,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허용하는 것 아닌가

네 번째는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이다. 산업자원부는 전력수급 안정대책의 일환으로 대기업이 공기업 민영화에 참여할 경우 출자총액제한에서 예외를 인정해 주기로 결정하였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허용해준 셈이다. 더욱 큰 문제로 등장하는 것은 그것의 매각방식이다. 발전자회사의 매각방식으로 정부는 '발전부문의 분할 취지에 따라 회사별로 주식을 매각하는 방식을 채택'하되 '궁극적으로 실질적인 민영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영권 매각방식을 중심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경영권 매각은 공모주방식에 비해 매각절차가 간편하고 거래비용이 저렴하며 특히 책임경영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주인 찾아주기 방식의 민영화'는 일찍이 정부산하의 '민영화 연구팀'에서도 지적하듯이 "재벌 및 외국인에 의한 전력산업의 지배" 위험성이 있을 뿐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취약하다"는 약점을 지닌다. 영국에서는 공모주방식을 통해 발전회사를 민영화함으로써 이른바 '주주 민주주의' (share democracy)를 달성하였으며 정부가 보유한 황금주를 활용하여 개별자본이 주식의 15%이상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실정이다.

■ '토큰 구입해 전기를 쓰는' 에너지빈곤인구에 대한 정부대책은

다섯 번째는 앞으로 대량 발생이 예상되는 '에너지 빈곤인구'(fuel poverty)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에너지 빈곤인구란 소득의 10%이상을 난방용 에너지의 구입에 지출하는 인구로서 세계보건기구(WHO)의 용어이다. 앞으로 농사용 전기에 대한 특례제도가 사라지고 주택용 전기요금에서 누진제가 폐지되면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나 저소득계층에서 에너지 빈곤인구의 발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영국정부(통상산업부)의 통계에 따르면 영국에서 에너지 빈곤가구는 2000년 현재 400만 가구, 전체 가구의 16%에 이른다. 이중의 상당수는 전기요금을 내지못해 전기회사로부터 토큰을 구입하여, 병원에서 동전을 넣고 TV를 보듯, 전력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영국에서 일 년에 얼어죽는 사람이 3만명이 넘는다면 이 역시 남의 나라일일 뿐인가?

비록 전력산업의 민영화가 정부의 주장대로 "값싼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소득격차의 확대와 더불어 나타난다면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 할 것이다.

■ 밥먹듯이 예를 드는 영국의 초과이윤세는 왜 외면하는가

여섯 번째로 정부가 영국의 예를 얼음에 박밀듯이 되뇌이면서도 막상 눈을 감아버리는 대목은 이른바 초과이윤세(windfall tax)이다. 영국정부는 민영화한 회사들이 엄청난 수익을 내자 노동당 정권의 집권직후 이윤의 일부를 일회적인 추가세금으로 징수하였다. 구조화된 청년실업을 구제하는 데 쓰인 이 세금은 총액이 83억2천만 달러에 이르렀으며 이 중 전력회사는 33억6천만 달러(약 4조원)를 납부하였다. 비록 개인간의 거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국가가 거래의 당사자로 참여하는 경우 이는 '주권'의 문제로 국제법상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영국 정부는 물론 학계의 정설이었다. 민영화의 목적이 국민의 후생을 증대하는 일인데 만약 인수기업이 막대한 초과이윤을 챙긴다면 우리나라 정부는 그럴 배짱이 있는가?

■ 한개 노조 완패시키려다 노사관계를 시한폭탄으로?

마지막으로는 노사관계에 대한 우려이다. 정부가 하기로만 한다면 한 개 노조를 완패시키기란 어렵잖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경영진의 작업장 장악능력이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향후 작업장 노사관계는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발전민영화가 사회정치적 이슈로 바뀐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총파업마저 불사한다고 선언하고 있어 이제 월드컵이란 국가대사마저 사회적 갈등의 볼모로 잡혀버린 느낌이다.

현재 전반적인 노사관계는 발전노조의 파업 외에도 주5일 근무제가 표류중인가 하면 공무원노조가 다시 '정부와의 전쟁상태'에 들어가 있으며 상반기 임단투까지 예정되어 있어 곳곳에서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발전산업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전투적 노조주의가 급속히 세를 얻어가고 있어 '스포츠'와 '선거'로 점철될 올해의 지형에 노사관계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포츠대회와 선거유세, 그리고 노동자 집회가 동시에 개최되는, 그리하여 한쪽은 응원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쪽은 정부의 실정에 대한 공격과 방어로, 다른 한 쪽은 임단투와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목청껏 외쳐대는 사회가 되어버릴 것이다.

■ 이제 대통령이 나서서 갈등을 화합으로 바꿀 차례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지표로 삼아왔다면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일이다. 앞에서 지적한 정부의 민영화(안)에 대한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는 민영화란 자칫 '국민적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설사 민영화를 추진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바탕에 두는 것은 오히려 시간을 버는 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영화로 인해 발생할 지도 모르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점검함으로서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간 전력산업의 구조개편과정에서 배운 교훈은 가능한 한 그 과정의 초기에서부터 사회적 당사자들을 참여시키는 일이다"라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지적은 우리에게도 허투루 넘길 일은 아니다. 민주노총마저 '조건 없는 대화'를 요청하는 판에 이제는 대통령이 나서서 사회적 갈등을 화합으로 바꿀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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