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이 팔을 다쳐 깁스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답은 쇼핑수레에 우편물을 싣고 평소보다 더 늦은 밤시간까지 배달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기 어렵지만 실제 있는 사례이다.

▷ 체신노동자는 집배원뿐만 아니라,
우편물을 분리하는 우편원, 창구업무를
하는 계리원, 운송원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많이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습니다).


언론에서 우리가 보는 집배원은 봉사와 헌신으로 집배업무를 하고 있는 '고마운 아저씨들'이다. 그러나 과연 '노동자'로서 이들이 느끼는 집배원은 어떤 것일까? 집배원들의 업무를 살펴본 결론부터 말하자면 체신노동자들 또한 최근 파업을 통해 열악한 근로조건을 여론화시킨 철도노동자들만큼이나 장시간 노동과 높은 산재율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 98년이후 4,700명 감축…아버지 교통사고에도 우편물 돌려
우리가 종이편지를 쓰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매일 얼마나 많은 광고물과 정기간행물을 집배원 아저씨들을 통해 받아보는가. 그러나 체신노동자들도 지난 98년 이후 4,700명이 감축돼 심각한 인력부족으로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배달을 하지 않고서는 이 우편물들을 다 소화시킬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특히 올해는 지방선거와 대선이 있어 업무량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후보자 선거물과 투표통지서 등도 집배원들이 전달해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집배원들은 자기 구역의 우편물은 자기가 다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파도 경조사가 있어도 자신이 하지 않으면 동료가 더 고생을 하게 되기 때문에 선뜻 쉴 수도 없다.

집배원 일을 한지 9년째 되는 황 아무개씨(고양 일산우체국, 34세)는 이같은 집배원의 애환을 담은 글을 체신노조 홈페이지에 간간히 올린다.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일산에선 우편물도 계속 증가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근무하면서도 휴일까지 나와 우편물을 돌리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지난해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가 의식을 잃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가족과 잠시 대화를 나눈 후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와 우편물을 돌린 일도 있다고 한다. 황씨는 자신이 정신병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는 것. 그러나 아무도 자신의 일을 대신해 줄 사람도 없고 인원도 부족하고 시간을 다투는 우편물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 시간외 근무 140시간…"내가 제정신일까?"
다음은 황씨 글의 일부.
"제가 제정신이었을까요? 아니면 인원을 보충해 주지 않는 우체국이 잘못된 것일까요?. 제 소원은 다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저녁에 퇴근해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부모님이 편치 않으실 때는 밤새워 간호도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집배원으로서 좋은 소식을 전하고 즐겁게 일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집이 먼 집배원들은 자정이 다 돼서 업무가 끝난 날은 그냥 우체국 휴게실에 잠을 청하기도 한다. 강남우체국의 시간외수당이 지급된 현황을 보면 대부분 120시간∼140시간이 시간외수당으로 기록돼 있다. 출퇴근현황을 보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침 7시 전후에 출근해 밤 11시30분 전후에 퇴근하고 있었다. 지난해 6월15일 과로로 쓰러졌던 광진우체국 임아무개씨의 경우 대학생 딸이 저녁마다 등기배달 업무를 도와줄 정도였다.
'12시간 이상 초과근로를 하게 할수도 있다'는 국가공무원복무규정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로 악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말 우편물 배달업무는 집배원들이 준법투쟁만 한다고 해도 마비될 것이란 전망이 허무맹랑한 말은 아닌 것이다.

■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산재사고
특히 집배원들의 산재사망사고는 별로 알려지지 않아 더욱 충격적이다.
정보통신부의 공식자료에 의하면 지난 한해동안 체신노동자 24명이 사망했다. 산업재해율 사망만인율(99년)을 전산업(3.08)과 비교해도 집배원(7)들의 수치가 두 배 이상 높다. 집배원들은 오토바이를 이용해 배달을 하다보니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률이 높다. 빙판길 사고나 다른 차량에 의한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사망률보다 중경상자 비율이다. 96년도에 200명, 2000년 433명, 2001년 508명으로 중경상자 비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체신노조 간부에 따르면 배달하는 집배원을 따라다녀보면 얼마 못가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집배원들은 많은 배달량 때문에 계속 뛰어다니기 때문.

지난해 행정연구원의 직무분석결과에 따르면 '건강이상을 느꼈다'고 답한 체신노동자가 53.8%에 달했으며, 집배원의 경우 66.6%나 됐다. 체신노조 김명환 법규국장은 "집배원은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도 아닌데, 소방공무원보다도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집배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 나빠졌다. 우편물 배달지체로 인한 민원접수도 99년 1인당 평균 1.9회에서 2000년 상반기에는 2.1회로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며 집배원들이 뛰어다닌다 해도 업무에 치여 우편물을 예전처럼 수취인 손에까지 쥐어주기보다 건물 앞 관리실 등에 맡기는 경우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편물이 언제까지 전달될 수 있으리라는 국가와 국민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집배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어디 책임감과 봉사감으로만 버틸 수 있는 상황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골마을 우체국의 집배원 아저씨가 우편물뿐만 아니라 생필품 전달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미담은 가끔 언론을 탄다.

■ 쏟아지는 업무량에 자꾸 작아지는 '공무원의 꿈'
집배원들의 이직률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지역 정규직 집배원의 경우 지난해 말 이직률은 7.6%에 달했으며, 상시위탁집배원들은 46.2%로 거의 반 정도가 다른 직장을 택했다. 장시간 노동 등 업무는 똑같으면서도 초봉에서만 30만원 가량 차이가 나는 상시위탁집배원들의 이직률이 높은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양천우체국 주영두씨는 "집배원들의 인간적인 삶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한계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황씨는 지금까지 '집배원'이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어릴적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최근에는 이런 '공무원'의 꿈이 작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많은 상시위탁집배원들도 이같은 '공무원의 꿈' 때문에 하루하루 힘든 노동을 견디고 있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행자부 이근식 장관은 지난 6일 체신노조 정현영 위원장과 면담에서 "개혁이 후퇴하지 않는 선에서 인력충원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말하는 '개혁'에 대해 오늘도 점심시간을 놓친 채 뛰어다니고 있을 집배원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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