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예정에 없던 회동이었다. 현대건설 자금난을 논의키 위한 자리였다.

이헌재 재경부 장관의 "은행장 제2금융권 사장 등이 리더십을 갖고 부하직원의 자금회수 건의를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25일 기자간담회 발언 직후 제 1금융권의 수장들이 스스로 모였다는데서 주목된다.

이날 회의는 과거 유사한 모임 때마다 회의를 주재하거나 동석이라도 하던 정부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은행장들의 자율 회동이라는 게 은행 연합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은행은 현대건설 주 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비롯해 농협 조흥 한빛 제일 서울 국민 주택 신한 한미 하나은행 등 11개 은행과 은행연합회 등 12개 기관이 참석했다.

■왜 모였나.

회의가 끝난 직후 발표한 결의문에서 행장들은 "올해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건설 기업어음(CP)나 대출금에 대해 무조건 만기연장을 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자금난 등 최근 일고 있는 금융시장 최대 참여자로서 은행이 액션을 취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실제 그동안 은행들은 최근 기업자금난이나 금융시장 경색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 받았다.

우선 지난달 자율결의 형식으로 출연키로 한 10조원의 채권펀드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아직 조성하지 않고 있다. BBB이하 등급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 펀드인 프라이머니 CBO에 대해서는 신용리스크를 이유로 8월초로 연기, 정부의 속을 태우고 있다.

또 자금 일부를 BBB급 이상 회사채 매입에 사용하기로 해 놓고도 실제 시장에서 매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 나오는 채권은 억지로라도 사들이지만 회사채를 발행하려는 기업들의 사전협의에는 냉담하기 이를 데 없다.

기업어음(CP)시장에 대해서는 아예 방관으로 일관, 중견기업의 단기자금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평가다. 결국 자금시장 안정책을 내놓은 지 한달이 지났지만 최근 다시 자금시장이 꼬이는 상황을 맞은 정부 입장에서는 은행들이 야속할 수밖에 없다.

■현대건설 자금난 은행에게도 책임 있다.

금융노조와 관치금융 청산을 다짐한 처지에서 정부는 은행이 못마땅하더라도 `속앓이'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현대건설 자금난은 그 인내의 임계점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은행장들을 향해 `쪽박을 깨는 행동은하지 마라'는 유례없이 강도 높은 비난이 바로 그것이다.

금융권의 이기주의를 싸잡아 꾸짖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특히 안전한 시장 조성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은행들을 지목해 현 상황을 꼬이게 했다는 책임소재를 분명히 했다는데 그 무게가 더해진다.

실제 이장관이 은행장들을 향해 구두경고를 내린 25일 저녁에도 모 은행은 현대건설의 CP 200억원에 대해 만기상환을 줄기차게 요구, 밤늦게까지 애를 태웠다는 후문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은행 수장들이 모여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해 보고 대책을 세워보는게 어떻냐'는 메세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 자금난 해소되나.

일단 은행장들의 합의에 따라 올해 안에 돌아올 현대건설 차입금 2조2595억원 중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대출금 회사채 CP는 무리 없이 만기가 연장될 전망이다.

최근 문제가 됐던 CP의 경우 모두 4,200억원이며 이중 은행이 3240억원, 투신 등 2금융권이 960억원으로 구성됐다. 은행분 3,240억원은 넘어간다는 것이다.

2금융권도 협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이 만기를 연장해주는 상황에서 `제몫 찾기'에 열중했다 입게되는 손실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