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위원안 공개 이후 협상안 우여곡절…마지막 협상안 주목

2월 임시국회가 소집되고,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가 7일로 끝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주5일근무제 도입 논의가 다시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은 당선직후 "(주5일근무제)논의를 활발히 해서 노동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안이 도출되도록 하겠다"고 밝혀 일단 주5일근무제 논의가 재개될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 노사정위 장영철 위원장 등은 얼마전 경총 고위관계자를 방문한데 이어, 14일에는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을 만나 협상 재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늦어도 다음주 초부터는 노사정 고위급협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남순 위원장은 지난 7일 "지금까지 논의된 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며 "2월이라는 시기에 연연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주5일근무제 논의를 둘러싼 또 한차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 주5일근무제 도입 논의의 시작과 현재
처음 주5일근무제 도입 논의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제기됐다. 98년 2월 노사정 합의 당시 정리해고 법제화와 함께 노사정위에서 근로시간단축특위를 구성해 노동시간단축 논의를 갖기로 한 것. 당시 IMF 외환위기에서 정리해고를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비정규직의 양산 및 실업난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노사정위의 근로시간단축 논의는 우여곡절을 겪다, 2년 뒤인 2000년 10월23일에 가서야 △ 업종·규모를 감안해 △ 연간 노동시간을 2,000시간 이내로 단축하고 △ 생활수준이 저하되지 않도록 하며 △ 휴일·휴가제도를 국제기준에 걸맞게 개선·조정한다는 골자의 '근로시간단축 관련 기본합의문'을 도출했다. 그 뒤로도 논의는 가닥을 잡지 못한채 노사정위 논의테이블 위를 맴돌았다.

그러던 중 2001년 7월24일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노동시간단축논의를 조속히 결론낼 것을 지시하면서 급피치를 올리게 된다. 당시 김 대통령은 "주5일근무제는 삶의 질 향상, 생산성 향상, 건전한 소비로 경기활성화에 일조할 것"이라고 밝혀 주5일근무제 도입 논의가 '삶의 질 향상'의 측면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이때 정부는 의욕적으로 "노사정 합의가 안되더라도 정부안을 통해 연내입법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난해 10월 공익위원안이 제출된 이후 논의는 또다시 제자리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언론 등에서는 "정부 단독입법은 안된다"라며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켰고, 정부입법에 따른 부담이 제기되면서 정부는 "다시한번 노사정 합의를 시도하겠다" 쪽으로 가닥을 잡아 현재까지 와있는 상태다.

■ 공익위원안 공개이후 노사의 협상전략
그렇다면 논의안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사실상 '공익위원안'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변형을 거쳐가며 지난해 12.12 '잠정논의안'이 거의 최종적인 안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정부안이 이후 같은달 17일 알려지게 됐지만, 이미 정부안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당시에 의견접근이 이뤄졌던 '잠정논의안'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노동계는 '임금보전'에, 재계는 '휴가·휴일축소'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보전과 관련 노동계는 '법제화'를 원칙으로, 공익위원안에서는 '기존의 임금이 보전돼야 함'이라는 선언적 문구에서, 잠정논의안에서는 기존 임금수준·시간당 통상임금 저하 없다는 것 등을 근로기준법에 명기하도록 구체화하고 있다.

반면 재계는 "일본보다 많이 쉴 수는 없다"는 '간명한' 모토로 휴일·휴가축소에 매진, 공익위원안에서 연월차 18∼22일을 잠정논의안에서 15∼22일로 3일을 더 줄여냈다. 이와 더불어 도입시기도 2002.7∼2007.7에서 2002.7∼2010.1로 2년6개월이 늦춰냈고, 초과근로시간 상한선도 현행 12시간 유지에서 3년간 한시적이란 단서가 붙긴 했지만 16시간으로 4기간을 늘렸고, 할증률도 최초 4시간분은 25%로 절반을 깎는데 성공했다. 또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현행 2주∼1개월에서 6개월 이내로 확대하는데 성공했는데, 여기에 정부안은 1년 이내로 확대하면서 힘을 실어주는 등 전반적으로 공익위원안에서 후퇴돼왔다.

■ 노사정 최종 협상안,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같은 논의과정을 지켜보면 논의의 초점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10월23일 합의한 기본원칙은 연간 2,000시간 이내로 노동시간을 줄일 것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2001년 잠정논의안이나 정부안은 이를 상대적으로 외면해온 측면이 있다. 이 안 대로라면 노동시간이 최고 2,912시간까지 가능해 당초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이 2,500시간에 이르는 현실에서 근로자의 삶의 질 및 창의력 향상,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근로시간단축"이란 명분이 무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암묵적으로 연간 2,700∼3,000시간에 이른다는 실제 노동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실제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논의 전개를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우선 시행하는 공공부문, 금융·보험업이나 대기업의 경우는 노조가 조직돼있거나 초과근로에의 의존도가 낮아 '충격흡수력'이 상대적으로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타 중소기업은 임금하락, 노동시간 증가, 소득격차 심화 등 당초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다.

현재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비정규직을 사실상 배제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배려는 1년미만자에 대한 1개월당 1.5일의 휴가를 주는 것 이외에, 주휴무급화, 생리휴가 무급화, 초과근로 4시간분 25%,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등에 따른 임금손실 및 노동조건 하락이 예상되고 있어 주5일근무제의 이점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시행시기도 민주노총에서 지적하는 "주5일 아빠, 주6일 아빠"라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낳는다는 점에서 보다 시행간격을 좁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주5일제 논의 시나리오 1> 2월 임시국회 통과 가능할까?
일단 노사정은 한국노총 선거가 끝나면서 주5일근무제 도입 논의가 조만간 재개될 것이란 전망에는 이의는 없는 것 같다. 사실상 한국노총 선거전 기간에도 노사정 실무자급에서 사전 조율에 나섰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조건하에서 논의 재개를 앞두고 우선 재선에 성공한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이 말한 "2월이라는 시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언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주5일근무제 논의는 적어도 2월 임시국회 통과를 전제로 올해 7월부터 시행할 것을 목적으로 해왔으나, 2월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논의가 2월을 넘어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 또한 이 위원장이 78%의 압도적인 표차이로 재선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동안 잠정논의안 등에 반대해왔던 한국노총내 제조업노조쪽의 반대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재계측의 행보도 2월 통과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임기총회를 오는 21일로 앞두고 있는 경총의 현 김창성 회장이 연임을 고사하고 있는데다, 오는 17일까지 해외출장을 하는 상황에서 그 안에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적어도 2월 임시국회를 통과하려면 절차상 오는 20일까지는 합의를 이뤄 의원입법의 형태로 국회에 제출돼야 하는데, 지금의 논의 속도로는 시간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 <주5일제 논의시나리오 2> 노사합의 가능성은 있나?
반면 일단은 노사합의만 이룬다면 2월 임시국회가 아니라도 4, 6월 임시국회 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선 한국노총 선거가 끝난 이후 노사정 당사자, 특히 정부측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노사정위의 한 관계자는 "설연휴 이후 논의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한국노총도 선거가 끝났고, 경총도 김창성 회장의 연임이 결정되면 각각의 체제가 공고화되면서 논의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다소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또 이 관계자는 "이제 문제는 노동부나 노사정위 보다는 노사 당사자에 달렸다"고 밝혀, 노사의 '마지막 결단'만이 남았음을 시사했다. 마지막 결단만 하게 되면 비록 2월내에 마무리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3월정도 합의를 이뤄 4월 임시국회로 넘기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를 둘러싼 환경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월로 넘어가면 국회는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로 돌입할 전망이어서 주5일근무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또한 논의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느냐도 하나의 변수라고 볼 수 있다.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은 "지금까지 논의된 안은 도저히 합의될 수 없는 안"이라고 못박은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계와 정부측은 "기존의 논의안에서 벗어난 논의는 어려울 것"이라고 못박고 있어, 한국노총이 전혀 다른 안을 꺼내기가 여의치 않은 것도 논의를 둘러싼 현주소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이 현재까지의 논의안의 대부분을 개악이라고 규정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면서 2월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 또한 주5일근무제 도입 논의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 주5일근무제 마지막 협상…원칙과 목표 재점검 필요
주5일근무제 도입 논의는 초기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서 출발해 삶의 질 향상으로 무게중심이 조금씩 이동을 해왔다. 이의 핵심은 2000년 현재 실노동시간이 2,474시간에 이르는, OECD 국가 중 최장시간 노동을 하는 국가라는 이름을 벗어버리고 국제기준에 맞도록 노동시간을 단축해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국가 경쟁력을 갖추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과정을 보면 그런 삶의질 향상과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확인이 되고 있다. 또한 10.23 기본원칙 합의 이후 논의가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당초 목적보다는 노사간의 실리적인 협상에 치중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제 논의가 재개되는 시점에서 주5일근무제 도입의 원칙과 목표를 다시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제 노사정은 어쩌면 DJ정부 내에서 마지막이 될 주5일근무제 협상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앞으로의 논의가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낼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