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직은 45세, 비서직은 32세'…정년차별철폐 위한 '18인의 투쟁'


지난 2일 대학노조 서울시립대지부(지부장 김길용)는 정년 57세, 임금인상 총액대비 11%(기능직 공무원임금 88%) 등에 합의, 학교측과 2000년도 단협을 체결했다.

파업돌입 103일, 단식농성 6일만의 일이다. 애초 단협체결은 하루전인 1일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수차례의 실무교섭과정에서 합의됐던 내용을 학교측이 번복하는 바람에 조합원들이 다시 총장실 점거농성에 들어가고 단식에 지친 3명의 조합원들이 실신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합의될 수 있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애초 합의가 예정됐던 2월1일을 하루 앞둔 31일 저녁 시립대지부 노조사무실을 찾았다.

■"가장 싫어하는 숫자 32, 45, 57"
"당연한 것을 가지고 100일을 넘긴 어처구니없는 파업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제일 싫어하는 숫자가 뭔지 아세요? 32, 45, 57이요."

나흘 전부터 시작된 단식농성으로 다소 지친 모습의 조합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꺼낸 첫마디였다.

비서직은 32세, 행정직은 45세. 단협이 체결이후 바뀌었지만 서울시립대 기성회직원들의 정년이었다. 국내 어느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년제한이다.

이와 관련해 대학노조 김은주 여성위원장은 "타대학의 동일직과 비교했을 때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정년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또한 대상들이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엄연한 '고용평등법위반'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00일을 넘는 파업 끝에 얻어낸 것이 여타의 직장인들에 가까운 정년 57세였다. 2000년 6월 단협교섭 때부터 노조가 주장했던 것이 이제야 이루어진 것이다.

기능직 공무원의 최하위급에도 미치지 못하던 임금은 공무원들과 같이 승급이 매겨지면서 기능직 공무원의 88%에 이르게 됐다.

"많이 울기도 했어요. 이렇게까지 하면서 정년제한을 늘리고 임금인상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식 사흘째 되는 날, 호흡불안정 증상을 보이며 병원에 호송됐던 김명수 조합원은 "쓰러져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쓰러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파업 기간중의 임금지급과 관련해서는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됐다. 장기간 파업을 했음에도 파업기간 중의 임금지급에 합의했던 숭실대, 덕성여대노조의 경우를 본다면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서성미 부지부장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받아 낼 수도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년'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싸웠기 때문에 무노동무임금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도 다른 대학 지부에 치명타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 "18명 전조합원의 간부화"
지난 해 10월23일부터 시작된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은 17명의 행정직 여성조합원과 시설관리직인 남성조합원 김길용 지부장이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외박이 잦아지고 귀가시간이 늦어지기 마련. 이혼 직전까지 간 조합원도 있었고 시부모와의 갈등도 있었다. 임신한 조합원들도 있었고, 출산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와 투쟁에 참가했던 조합원도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조합원에다가 18명으로 시작한 파업이 성공적으로 끝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안 해본 투쟁이 없었다. 단식농성에다가 소복을 입은 채 광화문 사거리에서 1인 시위도 했다. 여성부, 서울시청, 시장관사, 총장집 등 찾아다닐 곳은 다 찾아 다녔고, 청와대 앞 집회도 할 계획이었다.

조합원들은 무모한 싸움이라고 생각했고 중간에는 회의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18명의 조합원들은 100일 동안의 파업 끝에 '정년 57세'와 함께 '동지'라는 것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52세의 지부장부터 25세까지의 조합원들은 차이가 없었어요. 파업기간 중 우리의 표어는 '전조합원의 간부화'였거든요. 당연한 것을 가지고 100일을 넘게 소모했지만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앞으로는 달라질 겁니다. 학교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겁니다."

여성 조합원들 중 가장 맏언니인 김명수(42)씨는 "파업동안 동지애가 많이 컸다"고 자랑했다. 조합원들 중 가장 막내인 최은경(25)씨는 "조합원들은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허물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18명은 파업 전에는 얼굴도 잘 모르는 사이였어요. 하지만 파업에 참가하면서 우리는 학교측에 속고 있었고 45세 정년이라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믿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고 상관들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우리는 '일당 백'을 해낸 겁니다"

17명의 여성조합원들 속에 1명의 남성조합원인 김길용 지부장의 헌신성은 돋보였다. 정년제한은 시설관리직인 김지부장의 이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조합원들을 챙겼다.

서성미 부지부장은 "지부장은 가정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면서도 조합일이라면 책임감있게 대처했다"고 말했다.

■ "시립대의 역사를 바꾸겠다"
시립대지부의 파업기간동안 타대학 지부들의 연대투쟁도 돋보였다.
시립대지부가 대학노조에 가입한지 1년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전북대, 강릉대 등 대학노조 국립대본부 소속 지부에서 쌀, 지원금 등의 물적 지원은 물론이고 국공립대 지부장들은 조를 나눠 매일 시립대를 방문했다. 서성미 부지부장은 "타대학 노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덕성여대 등 비슷한 시기에 파업에 돌입한 대학노조들의 연대도 빼놓을 수 없다. 조합원들이 입고 있는 투쟁조끼를 고려대노조에서 지원받았으며 이들 세 대학노조들이 연대집회도 몇 번 있었다. 고려대노조의 문선대, 시립대노조의 율동패 '다듬이', 덕성여대노조의 풍물패는 서로의 파업장소를 방문하며 힘들 북돋워 줬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서성미 부지부장은 "대학노조 내에서 사립대와 국공립대간의 벽을 허물고 교류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시립대보다 앞서 파업을 벌이고 단협을 체결한 숭실대와 덕성여대의 경우 노조, 교수, 학생 간의 활발한 연대가 대학의 민주화를 한걸음 앞당기는 구실을 했다. 이들 학교에 비해 시립대의 경우 대학내의 직장협의회, 학생들과의 연대가 미흡한 가운데 외로운 싸움을 전개해 왔다.

"이제껏 총장의 독단적인 대학행정을 쇄신하고 바꿀 수 있는 분위기가 존재해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직급이 낮은 우리들이 처음으로 바꾸었습니다. 시립대의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서성미 부지부장은 "100여일 파업투쟁의 승리를 바탕으로 이후 학생회, 직장협의회 등과 연대해 총장 선거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등 소수의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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