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1년5개월 '기쁨 그리고 고민'
"경찰 과잉진압 국가 배상 받은 일 잊지 못해"



◁ "해고 1년 5개월째, 교육도 받고 연맹 일도 하고 바쁩니다." "복지…하고 싶죠." '언젠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리 크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이들은 동료들과 치열하게 부딪히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곳, 호텔롯데라는 '일터'가 한없이 그리운 것이다.

이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은 만3년 근무 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그 동안 이 사업장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발목 잡았던 일방중재 조항이 올 5월31일 사라진다. 피해자에게 오히려 화살이 돌아와 '성역'처럼 여겨졌던 성희롱 문제가 이 사업장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성희롱 고충처리위원회'라는 떳떳하게 비빌 언덕이 존재한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이것을 얻어내기 위해 한여름 '땡볕'아래서 살을 부대끼며 74일간 파업을 벌였다. 파업 21일째를 맞는 6월29일 새벽 4시, 자신의 일터인 37층, 38층에서 농성을 벌이던 이들은 일명 '솔개부대'라는 대테러 특공대까지 동원된 공권력에 의해 강제 해산 당한다. 이 과정에서 배속 아이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조합원도 있었다. 경찰이 터트린 섬광탄으로 화상을 입은 한 여성조합원은 지금도 그 상처를 바라봐야 한다.

2000년 민주노총 투쟁의 한 가운데 있었던 호텔롯데노동조합.
벌써 1년5개월 째 해고자로 지내고 있는 호텔롯데노조 정주억 위원장, 김경종 부위원장, 이남경 사무국장, 이미영 조직부장, 박정의 여성부 위원장(모두 파업 당시 직책)을 '5분 데이트'에서 만났다. 이들은 호텔롯데와 그리 멀지 않은 모빌딩 지하 사무실에 '둥지'를 틀고 있다.

■ 요즘 뭐 하십니까?…"교육도 받고 연맹 일도 하고 바쁩니다."
"투쟁을 하고 나서 느낀 건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남경 사무국장은 주위에서 '열혈남아'라고 부른다. 민주노총 노동자학교, 선전학교, 노동법, 인터넷, 노동교육원 호텔업종 연구회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는 배우고 또 배운다.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다. 남반구노조 연대회의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토론회나 회의, 서비스연맹 문화부장 활동과 율동패까지.
이남경 사무국장은 요즘 정말 "바쁘다 바빠!"

"전 그냥 편히 있습니다." 위원장의 짧은 대답에 지켜보던 이국장이 "아닙니다"하고 손을 내 젖는다. "호텔에 입사할 때부터 막연히 갖고 있던 꿈이 있었습니다.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이 호텔에서 제일 잘해보자. 지금 그 소망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거죠." 정주억 위원장은 매일 낮 시간(12∼1시)을 이용해 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노동계에서 국제연대는 꼭 필요합니다. 외국어를 배우다 보니, 도움도 줄 수 있고…참 좋습니다. 재미도 있구요." 옆에 있던 이남경 사무국장의 칭찬이 이어진다. "연맹과 관련된 국제 업무는 다 정위원장이 합니다. 젠센동맹 워크숍, 자료 번역…"

상급단체인 서비스연맹에서 대외협력부장 활동을 하고 있는 정위원장은 국제업무도 그렇지만 최근 조철 수석부위원장이 2000년 호텔3사 파업으로 해고를 당하면서 대책 마련에 발걸음이 분주하다.

■ 해고 벌써 1년5개월 … "경찰 과잉진압 국가 배상 받은 일 잊지 못해"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 국가로부터 첫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일은 죽어도 잊지 못합니다."
노조 집행부로써 가장 미안하게 생각되는 '6·29 공권력 투입.'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조합원들의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자연스레 그늘이 졌다. 섬광탄 실험까지 하면서 열정적으로 매달린 재판. 국가의 잘못된 점을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었고 '상처'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어서 정말 흐뭇했다고 이남경 사무국장은 말한다.

정주억 위원장의 '기쁜 일'도 들어보자. "조합원들이 굉장히 의식이 높아졌습니다. 조합활동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고 회사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는데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아∼ 이렇게 변하는구나." 조합원들이 해고자 사무실로 찾아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정위원장이 발견한 파업 이후 현장의 '변화'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기쁜 일이 있으면 그 반대의 일이 있듯 해고된 집행부로써 겪는 고민도 만만치 않다. "조합사무실을 출입할 수 없어 답답한 게 많습니다. 해고자 사무실이 거리 상으로 멀지 않지만 현장에서 부딪히고 공유하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죠." 호텔측이 제기한 '노조사무실출입금지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현장과 이들 사이엔 커다란 금이 그어지게 된다. "전근대적인 노사관계를 정말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결단 속에서 파업까지 했는데 회사는 별반 달라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김경종 부위원장은 변하지 않는 회사의 태도에 갑갑하다고 말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조의 짧은 역사 속에 힘든 투쟁으로 조합원들 인식이 갑자기 올라간 측면이 있죠. 그러나 식는 것도 빠른 것 같습니다." 조합원들이 일상 생활로 돌아가면서 '노동자'라는 인식이 조금씩 흐려져 가는 느낌이라며 이미영 조직부장은 우려가 된다고 한다. 유일한 여성 해고자인 박정의 여성부위원장의 고민도 깊다. "아직 부모님과 시댁은 해고 사실을 모릅니다. 가장 큰 문제를 집안에서 공유할 없으니 좀 힘이 들긴 하죠."

■ "해고자, 비해고자가 아닌 우린 그냥 동집니다."
"조합원들이 저에게 와서 '힘들죠?', '들어와야 할텐데…' 하고 걱정해줄 때 고마운 생각도 들지만 솔직히 맘이 아픕니다." "뭔가 안타깝다는 인정 어린 시선이 좀 부담스럽습니다. 해고됐지만 동지잖아요." 이들은 '해고자', '비해고자'라는 무언의 벽이 더 두터워 질까봐 두려운 모양이다. 물론 이들의 큰 소망 중에 하나는 '복직'이다. 해고자라면 별반 다를 수 없는 대목이다. "복직… 하고싶죠." '언젠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리 크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이들은 동료들과 치열하게 부딪히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곳, 호텔롯데라는 '일터'가 한없이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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