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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연대회의 공동대표 박경석씨"집안에만 갇혀있기 싫어요…대중교통에 장애인 시설을"
- 건교부선 "장애인 문제"-복지부선 "교통문제" 떠넘기기

서울 워커힐 입구에 있는 정립회관 마당. 박경석(42)씨는 두 손으로 휠체어의 쇠바퀴를 굴렸다.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박혔다. 허연 머리를 뒤로 묶었고 수염이 잡초 같다. 그렇게 기자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1980년 대학 1학년을 마친 그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그는 연애 편지로 유명했다. 그의 여자친구는 날마다 편지를 띄웠다. 이로 인해 시샘과 부러움, 또 기합의 단골 대상이었다. 그는 제대 후 마도로스의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장애인을 위한 야학인 ‘노들장애인학교’ 의 교장이 됐다. 작년에는 장애인도 버스를 탈 수 있게 해달라는 시위를 벌여 매스컴에 등장했다. 서울 시청 앞에서 동료와 함께 쇠사슬을 묶은 채 항의하던 그의 몸에서 빗물이 줄줄 흘려 내리기도 했다.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 이 사내는 참담한 과격 투사처럼 비쳤다.

어떤 세월이 흘렀는가. 83년 제대했을 때 그는 항해사 자격증을 딸 궁리뿐이었다. 그 와중에 대학의 행글라이딩 서클에 가입했다. 늘 움직여야 하는 인간형이었기 때문이다.

그 해 여름방학, 경주 토함산 정상에서 열린 행글라이딩 대회. 그는 툭 터진 창공을 향해 뛰었다. 몸이 붕 떠올랐다. 모든 게 찰나였다. 줄 끊어지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순간, 그는 추락해 있었다. 갈비뼈가 양쪽으로 4대 부러졌다. 폐에서 피가 흐르고 눈알은 튀어 올랐다. 가장 심각한 것은 척추 6·7번이 골절됐다는 점이다.

“잠시 의식이 들어왔을 때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알았어요.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진 뒤 척추가 움직이지 않도록 침대에 묶여있었어요. 하루에 몇 번씩 악몽을 꿨죠. 꿈에서는 걷는데 눈 뜨면 움직이지 못해요. 과거를 떠올리면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석 달 뒤 처음으로 휠체어에 앉혀졌어요. 휠체어를 밀던 모친이 입구 계단 앞에서 안절부절못할 때 ‘이런 식으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라고 속으로 외쳤어요. 내 삶이 무너지게 된 그날 밤 펑펑 울었습니다.”

6개월 뒤 퇴원했다. 잠실 근처 주공아파트에서 부모와 함께 살면서, 그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잡념에 빠져 있었다. 하염없이 울던 여자친구도 떠나보냈다.

“새벽이면 모친은 무감각한 내 발을 잡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셨어요. 그럴 때면 ‘한 달만 살고 죽어도 좋으니 옛날처럼 걷고 싶다’ 라며 속울음을 울었어요. ”

집은 아파트 1층이었지만, 출입구에 램프가 없이 계단만 있었다. 혼자서는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감옥과 같은 세월, 한 달에 네 번 교회를 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었습니다. 형이 와서 데려다 줬어요. 당시 일기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구더기가 몸 속에서 기어 다니는 느낌’ 이라고 썼어요. 그래도 사람이 그리웠어요. 한 번은 비오는 날 교회에서 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몇 시간을 흠뻑 젖은 채 기다렸습니다. 휠체어를 탄 내 모습을 보면 택시는 그냥 지나쳐요. 한 운전사로부터 ‘왜 환자가 나돌아 다니느냐’ 는 불평도 들었죠. ”

절망적인 세월, 86년 봄 그에게 소포가 배달됐다. 책 20여권과 ‘당신에게 1주일에 한 번 영어를 가르쳐주고 싶다”라는 내용의 메모. 교회 수련회에서 만난 두 살 연상의 대학원생이었다.

“토요일에는 영어를 가르쳐주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데려다 주었어요. 1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어요. 그녀의 헌신으로 인해 비로소 살고 싶었고 무언가 하고 싶었지요. 그녀는 이제 형수가 됐어요, 형수가….”

기자를 향해 장난스럽게 웃었다.

“당시 독일에 유학 중이던 형이 잠시 귀국했어요. 형은 첫눈에 그녀에게 빠졌어요. 그날 밤 내게 ‘그녀와 결혼해도 괜찮겠나’ 라고 물어요. 다음날 형은 교회에 같이 나가 그녀에게 구혼했어요. 사흘 만에 이뤄졌죠. 형 부부는 모두 교수가 됐어요.”

88년 그는 서울장애인복지관에서 직업훈련을 신청했다. 처음으로 생활 속에서 장애인을 만났다. 컴퓨터를 배웠으나 직업을 구하진 못했다. 91년 그는 숭실대 사회사업학과에 입학해 10여년 아래 동생들과 다녔다. 이들 동급생은 조를 짜서 그를 5층 강의실까지 옮겨줬다. “대학측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을 호소했으나 될 리 만무했죠. 제도적인 지원이 없으면, 장애인 문제는 결국 가족에게 떠넘겨지죠. 보통의 집안에서는 장애인 자녀에게만 신경 쓸 수 없어요. 그냥 집에 가둬두면 편하죠. 장애인은 소외되고 교육의 기회를 잃게 되죠. ”

그는 대학 다니면서도 장애인을 위한 야학 교사로 일했다. 대학성적은 평점 4점이 훨씬 넘을 정도로 우수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입사 원서를 냈다.

“당시 35세였지요. 나이 초과로 퇴짜를 맞았죠. ‘장애인 고용이 안되는 현실에서 장애인 고용을 촉진시킨다는 기관까지 일반 대기업처럼 이럴 수 있느냐’ 고 따지니 ‘규정이 그렇다’는 답변뿐이었죠. 몇 군데 더 시도했지만 똑같은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 뒤 교수의 추천으로 한 신설 복지관에 총무과장으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얻은 안정된 직장, 그러나 1년 반 만에 나왔다. 그는 “야학 활동을 병행하는 게 어려웠다.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직장 쪽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나이로 마흔 살에 결혼했다. 11살 연하의 여인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은 것이다. 한쪽 다리를 저는 부인 역시 장애인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한때는 공공근로(컴퓨터 업무)를 해 살았지요. 현재 사는 집이 어머니 명의여서 기초생활보호대상자도 아니지요. 아내가 여성단체에 상근하므로 한 달에 50만원쯤 벌어요. 나는 무능한 가장입니다. 저축은 전혀 없죠. 대신 어머니 집을 담보로 빌린 빚이 3000만 원쯤 있어요. 장래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을 한 적 없어요. ”

작년부터 그는 세상 밖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이동권 연대회의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흡사 우리 사회의 감당하기 어려운 인물처럼 됐다.

“한 지하철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lift)를 이용하다가 떨어져 숨졌어요. 리프트를 이용하는 데 20분 이상 걸립니다. 지하철 승객들의 구경거리가 되죠. 왜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죠. 우린 버스 타는 것도 포기했어요. 왜 포기해야 합니까. 버스나 지하철은 대중교통인데, 장애인은 대중이 아닌가요. 작년에 우린 그렇게 외쳤어요. 하지만 건교부에서는 장애인 문제이므로 복지부로, 복지부는 교통 문제이므로 건교부로, 총리실에서는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 바란다는 답변만 옵니다. ”

기자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 “이런 사회에 대해 적의를 느끼는가”라고.

“이 사회는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 살 수 없도록, 장애인의 삶과 무관한 잣대와 편견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외치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살고 싶기 때문에….”

휠체어에 앉은 그는 “과거에 걸었던 시절을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큰 눈은 금방 울 것 같다.

◆박경석씨는83년 행글라이더 타다 줄 끊어져정립회관 노들장애인학교 교장

박경석씨가 교장을 맡고 있는 노들장애인학교의 학생수는 32명. 초·중·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장애인들이다. 오후 6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정립회관에서 수업이 진행된다. 교사는 직장인이나 대학생이며, 자원봉사하면서 야학 운영비도 낸다. 장애인은 장애라는 핸디캡에다 교육을 받기 어려운 환경 때문에 이 사회에서 더욱 소외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작년에 장애인이동권(이동권) 연대회의의 공동대표를 맡아 종종 시위의 주동자로 등장했다. 또 한 달에 한 차례 장애인이 단체로 버스를 타는 행사를 벌여오고 있다. 오는 22일에는 10번째 대규모 버스 타기 행사를 벌일 작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의 숫자는 145만명. 이들의 외출 빈도는 한 달에 평균 5회라고 한다.

그는 “장애인이 들어오면 땅값 떨어진다는 식의 편견도 문제이지만, 장애인에 대해 시혜와 동정을 유발하는 편견은 더 나쁘다”라고 말했다. 장애인은 똑같은 인간이며 단지 약간의 불편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최보식 기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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