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본지 1월11일자 <잠깐주목!>에 현대차노조 김호규 대의원이 쓴 '울산 태광노조 민주노총 탈퇴와 현대차노조 임단협 잠정합의 부결이 주는 교훈'을 보고 김호규 대의원의 평가가 문제의 핵심을 짚지 못했다며 보내 온 글입니다.


지난해 태광 투쟁은 매년 치러지는 임단투가 아니었다. 태광자본은 총 조합원 수의 1/4에 달하는 507명을 강제감원하려 했고 노조와 조합원은 이러한 생존권 박탈 기도에 맞서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따라서 적당한 선에 타결을 짓고 조금은 아쉽지만 과반수의 동의가 획득되면 마무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었다.

최소한 정리해고 완전철회 없이는 대중적인 합의를 시도해도 안되었고 설령 합의가 된다하더라도 파업을 중단해선 안되었다.(애초 파업 돌입시 요구는 정리해고 철회가 아니라 사측의 대량휴직조치에 따른 고용안정쟁취였다)

아무리 무난한 대중적인 합의가 있었다하더라도 정리해고 완전철회가 없으면 사측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83일간의 장기파업을 감내했던 조합원들의 패배감은 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파업 직후 으레 가해지는 현장탄압을 뚫을만한 조직력을 되살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요컨대 당시 파업중단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합의과정의 부재가 핵심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것으로, 본질은 정리해고 완전철회라는 핵심쟁점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저항을 위한 노조(노동자) 최고의 무기인 파업투쟁을 접어버렸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패배감에 휩싸였고 현장은 말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투쟁 마무리 국면'에 대한 문제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태광 투쟁 패배와 민주노조 몰락의 핵심 원인으로 접근해 보자.

지도부의 무기력한 파업 중단과 현장활동가들의 묵인, 그리고 정리해고 강행과 민주노조 몰락까지 이르는 데는 태광 자본의 공격수위에 대한 심각한 오판이 있었다.

법적 소송이 남아있긴 하지만 부채비율이 제로에 가까운 알짜배기 기업 태광에서의 정리해고는 사실상 성공했다. 따라서 이제 한국에 존재하는 기업이면 그 기업이 부도가 났든 사상 초유의 순이익을 내고 있든 간에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된다. "지금은 여력이 있더라도 앞으로의 경기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사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곧바로 정리해고 사유로 둔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래적 의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다.

정권과 자본은 바로 이 본래적 의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면화하기 위해 태광으로부터 그 포문을 열고자 했고 성공한 것이다. 지도부나 현장활동가들이나 태광같은 알짜기업에서 설마하는 마음으로 협상에 목매거나 안이하게 대응하다 처참하게 당한 것이다. 오판한 것은 태광 조합원들뿐만이 아니다.
태광 정리해고 사태가 한국노동운동에 미칠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태광의 정리해고 저지 투쟁은 한 단위노조의 좀더 처절한 투쟁 정도로 치부돼 버렸다.

7.5 총파업 불발이 효성.태광.고합을 고립시켜 버렸다는 얘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지난해 10월 태광에서 정리해고가 강행되고 해고자들이 용역경비들에게 얻어 터져가며 싸우고 있는데도 태광 정문 앞에서는 변변한 지역집회 한 번 열리지도 않았다. 우리가 민주노총 울산본부에 아쉬운 마음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태광에서 벌어진 대량 정리해고, 민주노조 몰락, 민주노총 탈퇴라는 일련의 '사태'는 태광자본의 공격수위에 대한 지도부와 현장활동가들의 심각한 오판, 민주노총의 방관을 비롯한 울산지역 연대투쟁의 실종이 낳은 참담한 결과다.

우리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우리의 잘못과 책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록 비참한 상황에 내던져져 있지만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처참한 패배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고민으로 보다 철저하고 정확한 평가와 교훈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며, 우리 또한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끝내 복직을 쟁취하고 태광에 다시 민주노조의 깃발을 내리꽂겠다는 결의를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태광 정리해고저지투쟁위원회 전화 052-227-6544, 팩스 052-227-6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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