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인 묘테테인의 사인(死因)을 밝혀주세요. "

청와대와 경찰청에는 지난해 12월 14일 특이한 탄원서 한통이 접수됐다.

지난해 9월 인천의 한 형광등 가공공장 작업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묘테테인(29) 사건과 관련해 경기도 부천의 '외국인 노동자의 집'이 보낸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은 지역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복지 문제를 상담해 주는 단체다.

그러나 탄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이 이미 자살로 종결했기 때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불소 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나왔다. 타살혐의점이 없어 자살로 결론냈다"는 것이 관할 경찰서 얘기다.

그러나 탄원인쪽 얘기는 딴판이다.

"사건이 나자 회사 사장은 종업원들에게 시신을 기숙사 방으로 옮기게 하고 '작업장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고 입 단속을 했다. 경찰도 기숙사 방만 살펴보고는 현장조사를 마쳤다"는 것이 탄원인측 주장이다.

또 그가 공장생활을 즐거워했기에 자살할 이유가 없고 시체 발견 당시 허리띠가 풀려 있는 등 누군가 강제로 불소를 먹였을 가능성도 있어 재수사를 요구했다는 것.

그러나 이미 시체가 화장된 데다 첫 목격자인 미얀마인 민나잉(34. 여)도 사건 다음날 불법 체류자로 강제 출국된 뒤여서 규명은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사인이 분명히 규명되지 않은 채 덮여지는 이른바 '외국인 의문사'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전국의 외국인 노동자의 집 등에 접수된 사인 규명 요구 사건만도 2000년 6월부터 지금까지 70여건. 그중 상당수가 수사당국에 의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돼 인권 시비를 부르고 있다.

"통역이 어려운 데다 유가족이 없고, 해당 대사관마저 무관심한 상태여서 굳이 힘들여 조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서울의 한 경찰서 외사담당 수사관의 말이다. "때문에 간혹 사인이 덮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해 8월 5일 경기도 화성의 한 야산에서 발견된 중국인 둥충영(31) 사망사건. 나뭇가지에 쇠사슬로 목을 맨 시신에서 발견된 신분증으로 신원이 확인됐으나 경찰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조사 없이 자살로 종결했다.

그러나 서울 외국인 노동자의 집은 타살 가능성을 들어 최근 독자적인 조사를 하고 있다. 중국에 부인. 아들이 있는 그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

수도권의 한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했던 가나인 조셉 두간(35)은 지난해 9월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다. 건장하고 명랑했던 그는 두달 뒤 숨졌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한국인 申모(32. 여)씨가 경찰에 사인 규명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의문점이 없다"며 사건 접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외국인 노동자 대책협의회 안성근 사무국장은 "외국인 변사 문제는 인권차원뿐 아니라 외교문제로 비화할 소지가 있는 만큼 우리 당국에서도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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