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의 여성운동은 지속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성장했다. 2020년대 접어들면서 여성의 정치력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소수'에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2028년 총선은 여성국회의원이 과반수를 점하는 혁명적 쾌거로 귀결되었고, 다음날 한 일간지에서 뽑은 '여의도의 기적'이라는 헤드라인은 여권(?權)의 고도압축성장을 의미하는 말로 한동안 회자되었다. 이 여성선량들의 초당적 협의체인 '안티마쵸21'은 첫 작품으로 전업주부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가사근로기준법'제정을 관철시켰다.

이 특별법은 그러나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분쟁의 양산에만 기여할 뿐, 예방이나 효과적인 수습에는 형편없이 무력한 것이었다. 남편들은 법에 대한 무지를 자랑으로 여겼으며, 법전을 들이미는 아내에게 주먹을 날리는 것이야말로 진정 가정의 평화를 위한 지름길이라는 신념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부부관계의 특수성'을 폭넓게 받아들여 적극적인 처벌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식 있는 주부들에 의해 '실력행사' 즉, '식사제작거부', '무단가출', '남편 동의 없는 장기친정기숙' 등 가사파업이 시도되었고, 이 모험적 투쟁은 오래지 않아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이 독특한 행위양식은 남편에 대한 권리보장요구가 주를 이루던 초기와 달리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사근로기준법 개정투쟁', '여성실업난 해소' 등 정책요구 관철을 위한 수단으로도 종종 활용되기에 이르렀고, 대규모아파트단지 등 주거밀집지역에서는 시기집중형 가사총파업이 시도되는 등 양태도 훨씬 과감해졌다.

후유증도 갈수록 심각해졌다. 무허가 이혼컨설팅사가 난립하고, 장기분규가정 자녀들이 부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등 웃지 못할 사건이 잇따랐다.

정부는 마침내 입법의 '깃발'을 올렸다. 그러나 정부의 깃발은 '가사근로기준법 현실화'라는 여성계의 여망과는 달리 '법률을 통한 가사파업의 규율'이라는 엉뚱한 지점에 꽂혀 있었다. 정부의 의지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여 사상 최초의 '설날 전국가사총파업'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김노자 여사와 함께 학습해야할 '가사쟁의및부부관계조정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하...참말로 말귀 몬 알아묵으시네....김여사님, 이렇게 이바고를 해도 이해가 팍팍 안 됩니꺼?"

어느 날 아침, 부산지방여성청 3층 부산지역가사조정위원회 사무실에서 홍월권 심사관의 애닯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심사관은 마주한 초로의 여성을 짜증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두 손은 셔츠와 바지의 주머니께를 열심히 주섬거리고 있었다. 그는 어렵게 찾은 담배와 라이터를 책상 위에 턱 올려놓았다. 상대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민원인 앞이라 차마 담배를 꼰아물지는 못하겠지만도, 지금 내가 이렇게 답답한 심정입니더"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맞은 편에 앉은 우리의 김노자 여사, 여전히 눈만 멀뚱일 뿐이다.

"보이소, 심사관님예, 좀 알아듣기 쉽게 말씀을 해주이소. 마, 저는 집에서 30년동안 솥뚜껑운전밖에는 해본 기 없어서 그렇게 어려운 말은 잘 모릅니더. 죄송하지만도, 함만 더 설명을 해 주이소. 와 파업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꺼?"

홍심사관의 미간에는 짜증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가사근로권 보장 속에 피어나는 부부행복'의 전도사 부산지역가사조정위원회의 베테랑 심사관인 자신의 직분을 상기했다. 그는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자아자, 김여사님 다시 한번 차근차근 정리를 해 보입시더. 에…또, 이 가사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말이지예. 일단 조정신청을 우리 위원회에 해야한다 이깁니더…"

"맞심더. 엊그제 제가 조정신청을 냈다 아입니꺼…"

"아아, 말 끊지 말고 단디 들어보이소. 에..또...일단 조정신청을 해야 되고 이 조정을 거치지 않으면 가사파업을 해서는 안됩니더. 이기 유식한 말로 '조정전치'라카는 깁니더. 마, 이런 건 몰라도 되고예. 그런데 조정신청을 했다꼬 해서 우리 위원회가 다 조정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기 제 이바고의 핵심입니더"

김여사는 이 대목에서 뭔가를 물으려다 말고 침만 꼴깍 삼켜버렸다. 아까 했던 질문을 또 해봐야 심사관 심기만 건드릴게 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홍심사관은 김여사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 뒤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즉, 행정지도라카는 게 있는데, 이걸 김여사님이 자알 이해하셔야 한다 이겁니더. '행정지도' 이걸 쫌 쉽게 풀어서 얘기하면 '당신이 한 신청은 조정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조정은 우리가 못 해준다. 대신 조정 못해줘서 미안하니까 느이들이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아마도 잘 될끼다' 뭐 이렇게 행정적으루다가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심더."
"그러니까 제 말이 그 말입니더, 와 자꾸 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꺼?"

참다못한 김여사가 결국 말을 꺼냈다. 위원회에 오기전에 상담도 받아봤고, 대학 다니는 딸에게서 자문까지 받은 김여사였지만, 정말 이 대목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에…가사쟁의및부부관계조정법에 따르면 말입니더. 가사쟁의가 발생해야만 조정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말입니더. 그러면 가사쟁의란 게 뭐냐? 법에 보면 가사쟁의의 규정이라 캐서 이렇게 나와 있슴더. 제가 함 읽어드리겠습니더."

홍심사관은 어느 새 자신의 거침없는 답변에 스스로 감복하고 있었다. 뒤편 책장에서 법전을 꺼내든 그는 익숙한 솜씨로 '문제의 조항'을 찾아 김여사 앞에 펴보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과시라도 하려는지 큰 목소리로 조문을 읽어 내려갔다.

"가사쟁의라 함은 혼인관계에 있는 전업가사종사자와 상대방 간에 재산관리, 가사, 육아, 휴식, 기타 대우 등 가사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더. 지금 저하고 우리 그 인간하고는 부, 분쟁상태 그기 확 발생해 뿌릿다 아입니꺼."

"아아, 김여사님. 끝, 끝까지 들어보이소. 제가 지금부터 형광펜으로 색칠하는 데가 키 뽀인튼기라예…. 이이 경우 주우장의 불일치라 함은 당사자간에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도 더 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되어 있심더…. 김여사님, 이기 무엇을 의미하는 지 그걸 자알 이해하셔야 됩니다. 단디 들어보이소."

홍심사관은 밀담이라도 하듯 목소리를 낮추고 신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만약 이 대목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날엔 이제까지의 수고는 다시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담배를 챙겨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예감이 뼈를 타고 전해져 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못 열정이 배어 나왔다.

"이기 무슨 말이냐 하면, 부부 지들끼리 서로 의견이 쫌 안 맞다꼬 해서 그게 무조건 가사쟁의는 아이다 하는 깁니다. 우리 위원회가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노력의 흔적, 즈윽, 교섭이라카는 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모, 부부 지들끼리 의견차이를 없애기 위해 언성도 좀 높여보고, 접시도 쫌 깨보고 이렇게 찌지고, 뽁고, 알콩달콩, 비비고, 쌔앵난리를 떨어도!"

홍심사관과 김여사의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그만 김여사는 주눅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강력한 어조로 김여사를 공략해 들어갔다.

"쌔앵난리를 떨어도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때 그 때, 조정신청을 하면 된다! 이기,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바고의 결론이라 이깁니다."

말을 마친 그는 찬찬히 김여사의 표정을 살폈다. 한껏 굳은 얼굴로 뭔가 골몰히 생각에 잠겼던 김여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론은 조정을 못하겠다 이거 아입니꺼?"

"조정을 못하겠다는 게 아이고 조정의 대상이…"

"암튼 저하고 그 인간하고는 여기서 조정을 못받는다는 거 아입니꺼?"

"정 조정을 받고 싶으면 남편하고 교섭이라도 몇 차례 하고 다시 신청 내이소."

"그 인간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코빼기도 안 보여주면서 파업 할래면 해봐라 하는 인간입니더."

"그래도 쫌 더 노력을 해 보이소."

"심사관님예, 그 인간 부부유별, 남존여비사상이 골수에 사무친 인간입니더. 어지간히 대들어서는 꿈쩍도 안할 인간입니더. 항복하게 만들라면 이번 주말 제삿날 때 파업하는 수 밖에는 없심더."

"에…. 최종적인 것은 법원 판사가 판단할 일이지만도, 일단은 불법행위라 캐서 김여사님이 고생할 확률이 많심더."

"부, 불법예?"

홍심사관은 대답대신 고개만 크게 한번 끄덕였다. 우리의 김노자 여사, 그만 이 대목에서 말문이 막혔나 보다. 금새라도 닭똥같은 눈물을 쏟을 것처럼 눈자위가 붉어지나 했더니 이내 고개를 파묻었다.

"…참말로 이해를 못하겠네예. 심사관님, 여기 몇 자 끄적거린 서류 몇 장 갖고 위원님들이 우리 부부사이를 얼마나 알 수 있겠십니꺼? 저하고 그 인간은 말입니더. 표정만 보면 상황이 우찌될지 감이 고마 확 와뿌린다 아입니꺼? 현실적으루다 교섭하나마나, 아니 불가능하다는 제 말을 와 안 믿어주는 지 모르겠네예."

홍심사관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오늘의 '강의'가 실패였음을 깨닫고 있었다. 어느 새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라고, 조정신청 그것도 억수로 웃기는 얘기네예. 심사관님 말마따나 찌지고 뽁고 쌩난리를 떨었는데도 둘 사이에 해결이 안되면 그 때는 당연히 파업을 해야되는기지, 여기 와서 조정받는다꼬, 뭐가 달라지겠십니꺼? 시간만 질질 끌어서리 어렵게 결심한 여인네 간뎅이만 쫄아들게 만드는 짓거리 아이겠심니꺼?"

김심사관과 우리의 김노자여사 사이를 희멀건 담배연기가 어지럽게 퍼지고 있었다.

"…가사쟁의머신가 하는 그 법이 진짜로 웃기는 짬뽕같은 법이네예. 진짜로 저 같은 주부들을 위하는 법이라카면 이 딴 식으로 배배 꼬아가 파업 몬하게 맹글 수 있는 깁니꺼? 이것도 하면 안되고, 저것도 하면 안되고, 그딴 기 무신 조정법입니꺼? 고마, '가사파업규제법'이라 카이소!"

김여사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한동안 둘은 말이 없었고 담배연기만 머리인지 꼬리인지 모르게 뒤엉키며 천장으로 솟아오를 뿐이었다. □

"행정지도 후 파업은 불법이 아니다"는 대법원판결도 나왔고 대한항공조종사노조 간부들도 이와 관련해서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정현민 객원기자의 이 꽁트는 '행정지도 후 파업은 불법' 논란을 풍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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