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00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내년에는 대우차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립1부 직원)
“10월말로 실업급여가 끝났습니다. 퇴직금도 다 떨어져가고, 이제 남은 건 아이 수술비로 남겨뒀던 적금 300만원밖에 없습니다. ”(정리해고자)

올해 가장 힘든 해를 보냈던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의 전혀 다른 세밑풍경이다.

26일 대우차 부평공장은 한산했다. 지난 21일부터 휴무에 들어가 정비직원과 사무직들만 출근했을 뿐이다. 그러나 내년 2월1일 생산예정인 신차T-200(1300~1500㏄) 라인을 정비중인 조립1공장에는 `희망'의 기운이 느껴졌다. 공장 입구에는 `부평의 희망 세계1위 명차 T-200'이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였고, `필생(必生) T-200, D-43일'이라고 쓰여진 안벽 게시판에는 직원들의 메모가 빽빽하다. “나는 확신한다. T-200이여”, “T-200 성공없이 부평공장회생없다”….

조립1부 이정호(38) 과장은 “1년 동안 많은 상처를 겪은 뒤, `다시 일어나겠다'는 직원들의 의지가 강하다”며 “6월부터 시작한 T-200 조립숙련도 평가에서 회사는 연말까지 평균 70점을 목표했으나, 벌써 92점으로 학습열기가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품질관리1부 박영진(42) 직장은 “직원들이 30분 전에 출근하고, 퇴근 후에도 남아서 정비하는 등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다”며 “공장이 주 3일만 가동돼 휴무일에는 조를 짜 공사판 막일을 나가기도 하지만 `우린 분명 다시 일어난다'는 확신에 차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평의 희망' 바로 옆에는 정리해고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정리해고(1750명),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난 사람은 모두 4509명이었다. 이 가운데 취업·창업 등 새출발을 한 이는1594명으로 3분의 1에 불과하다. 대우차 퇴직자들의 전직을 도와주는 희망센터의 김경운 차장은 “퇴직자들이 그동안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계를 끌어왔으나, 지난달을 끝으로 대부분 수령이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해고자들은 지난 12일부터 정문 바로 옆에 비닐천막을 쳐놓고 농성중이다. 정리해고자 황길용(33)씨는 “400~500명의 해고자들이 1주일에 1~2번씩 찾아와 복직문의를 한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1㎞ 정도 떨어진 산곡성당에는 김일섭 노조위원장 등 수배자 8명이 지난 2월부터 계속 머물고 있다. 27일 열리는 노조연말집회 준비가 한창인 성당 마당 단 위에는 퍼포먼스를 위해 만든 `정리해고작두'가 놓여있고, 그 옆에는 인천지역 민주노총본부가 보내준 쌀 257가마가 쌓여있다. 집회가 끝난 뒤, 정리해고자들에게 한 가마씩 나눠줄 예정이라고 한다.

김일섭 노조위원장은 오랜 텐트생활로 인해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약봉지가 수북하다. 그는 “해고자들은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습니다. 그러나 복직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2001년말, 부평공장에는`희망'의 온기가 피어오르면서도 그 뒤쪽에는 차가운 `그림자'가 가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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