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은 세계 인권의 날. 올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출범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동 등으로 인권 신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가 한층 커진 한해였다.
그러나 인권단체와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인권 향상에 일부 진전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인권침해 사례가 산적해 있어 인권선진국을 향해 갈 길이 아직도 멀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26일 출범한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건수는 9일 현재 모두 668건. 전화문의까지 합치면 1603건에 이른다. 그동안 사회적 분위기 등에 짓눌려 내놓고 얘기하지 못했던 각종 인권침해 사례가 속속 물위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접수된 진정의 대부분은 여전히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사례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교도소 등 구금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군의문사 등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특이 이들 진정 중에는, 의료보호 환자란 이유로 약을 주지 않는 동네약국의 차별행위를 고발한 장아무개(72)씨의 사연, 3년 동안 일했으나 임금을 한푼도 못 받았다는 한 베트남 불법체류자 사연 등 각종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행위사례가 많이 접수되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에 접수되는 각종 진정 등은 인권선진국을 향한 우리사회의 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인권의 날인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내 인권현실과 국가정보원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입장, 울산구치소 등 첫 현장조사 경과 등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인권위 활동 방향 등을 자세히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정재헌)는 이날 발간한 <2000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6월 일어난 서울 롯데호텔 농성노동자 진압사건을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로 꼽고, “이 사건은 국가기구의 반인권적 성향이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켰다”고 지적했다.
변협은 또 “여자 연예인의 성행위 비디오 유포사건 등에서 보듯이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반인권적 침해행위에 참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변협은 특히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지난해 전체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자의91.4%가 고무·찬양(제7조) 조항에 의해 구속됐으며, 1심 재판에서 92.9%가집행유예 등으로 석방되는 등 무리한 법적용이 여전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변협은 “지난해에는 남북정상회담 성사,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사건, 한국군의 베트남전 학살의혹 진상규명, 매향리 미군 폭격장 문제 제기 등으로나 름의 뚜렷한 인권신장도 있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곽노현 방송대 교수(법학)는 “안정된 일자리와 노동기본권 등 `사회보장권'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권신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인권위의 탄생으로 인권침해와 차별행위 등을 막아낼 수 있는 제도적 차원의 장치는 마련됐지만 분배격차 심화 등 인권상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각종 인권침해적 요소는 여전히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