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실업대란'이 시작됐다. 올해 취업을 원하는 대졸 예정자와 취업 재수생은 총 43만명이지만 일자리는 6만여개에 불과해 내년 초에는 실업률이 5%에 육박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현재 상황은 98년 외환위기 직후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업대란 원인=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실업대란은 근본적으로 외환위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들은 체질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인원감축을 실시했고, 영업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을 채용했다.

그로 인해 대학생들은 휴학이나 어학연수 등을 통해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 2000년 이후로 졸업을 1∼2년 정도 늦췄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됐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적인 경기불황의 여파가 IMF를 졸업하자마자 우리나라를 '공습'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졸업을 미뤘던 학생들과 취업재수생들이 작년과 올해 '구직전선'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 다시 미국 테러참사, 세계적인 경기침체, 국내기업의 구조조정 강화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내년 취업률은 더 큰 폭의 하락이 전망된다.

또 최근의 대학진학률 상승은 곧 대졸자 증가로 이어져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한국경제가 더 이상 과거처럼 두 자릿수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대졸자의 '공급과잉'이 빚어진 것.

여기에다가 구직자들의 눈높이는 여전히 외환위기 이전으로 '높게' 고정돼있어 정작 3D업종에는 심각한 인력난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 졸업자들은 대기업을 선호하고 있는 데 반해 이들 대기업들은 예년에 비해 극히 적은 수만을 채용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기형적인 성장의 단면을 최근의 실업난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취업난 실태=한 벤처기업의 공개채용에 고급인력들이 대거 몰려 70대1의 경쟁률을 보여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지난 1일 공개채용을 마감한 IT마케팅 전문업체인 큐앤에스는 7명을 공개 채용하기로 하고 모집을 실시했는데 500여명이 지원해 70대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명문대 출신으로 석사취득자와 해외 유학파들이 대거 지원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300명 모집에 5만2000여명(173대 1)이 몰리자 깜짝 놀랐다. 경쟁률도 경쟁률이지만 수만장의 서류를 심사하려면 인사팀 인력을 총동원해도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한일 합작법인인 도레이새한에는 10여명 모집에 3016명이 지원, 30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아무리 실력을 갖춘 지원자라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밖에 INI스틸은 210대 1, LG텔레콤은 120대 1, KOTRA는 1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이제 어지간한 기업의 경쟁률은 1000대 1을 훌쩍 넘는 상황이다.

한 구직전문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취업하려는 대졸 예정자와 취업 재수생은 43만명이나 일자리는 6만여개에 불과한 데 따른 결과"라며 "게다가 석-박사와 해외유학파까지 가세해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졸자들의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학교에 남아 '좋은 세상'을 기다리고 있다. '취업시 현역(졸업예정자)이 예비군(졸업자)보다 유리하다'라는 불문율이 이들을 학교에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 취업정보실 관계자는 "취업상담을 하러 오는 학생중 상당수가 한 두 학기 학교를 더 다니는 건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라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최근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실업률(15∼29세)은 95년의 5.5% 수준에서 지난해에는 12%선으로 2배나 늘어났다. 이는 뉴질랜드와 함께 성인실업률의 2.6배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전망과 대책=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런 경향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최근 발표한 '경기둔화와 노동시장의 고용동향' 보고서에서 미국의 테러전쟁으로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수출 등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내년 1.4분기까지 고용사정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경기하락에 따른 기업의 인력구조조정 ▲계절적 요인 ▲신규 대졸자 노동시장 진입 등으로 연말연시에 실업자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앞으로는 정규직보다는 임시 일용 파트타임 파견 재택근로 등 비정규 근로자가 늘어날 추세다. 임시일용직 근로자 비율은 99년 51.7%로 전체 근로자의 절반을 넘은 뒤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대졸 취업희망자가 연말에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현행 대학의 2학기제를 4학기제로 바꾸거나 대졸자가 취업 즉시 일을 할 수 있도록 인턴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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