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파업 돌입 이후 조합원들은 오전, 오후 인천기념관,
학교 주변에서 집회를 하며 파업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민족의 대학'에서 '세계의 대학'으로! 2005년 개교 100주년을 앞둔 고려대는 21세기 아시아 5대 대학, 세계 100대 대학을 목표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11월29일 고려대학교. 고려대 최초로 비운동권이 당선된 총학생회 선거가 막 끝난 무렵이라 그런지, 게시판에 홍보물이 가득하다. 학생들의 자유로움, 고풍스런 대학 건물, 학문에 대한 열정,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몸을 부딪히며 운동하는 젊음. 고려대 또한 여느 대학캠퍼스처럼 그 자체가 생동감이다. 대학캠퍼스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흠뻑 젖어있을 때쯤, 멀리서 노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파업가'였다.

사무, 기술기능, 일반기능직 직원으로 구성된 대학노조 고려대지부가 16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의 명문대학'으로 도약한다던 고려대 직원들이 완전히 일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한 두 명이 아닌 안암, 서창캠퍼스 조합원 396명 전원 중 단 몇 명을 제외한 390여명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왜일까?

■ "임금은 포기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직원을 우습게 보는 것"

검은색 투쟁복을 입은 400명 가까운 조합원들이 인촌기념관에 모여 있다. 지난 14일 파업 돌입 이후 조합원들은 오전, 오후 인촌기념관, 학교 주변에서 집회를 하며 파업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본관 앞에 탄탄히 쳐진 천막, 조합원들의 분위기로 보아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저절로 느껴졌다. 50세가 넘어 보이는 한 남성 조합원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힘드시죠? "하나도 힘든 것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정당한 싸움이니까요." 이런 대답은 간부부터 일반 조합원들까지 일관되게 흘러나온다.

"임금은 포기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학교가 직원들을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조금은 앳돼 보이는 노조 한재호 지부장의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현재 고려대 노사간 쟁점은 크게 네 가지. △직원인사위원회, 징계위원회 △계약직문제 △임금 △서창캠퍼스 전임자 보장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올 임단협은 '이전에 하던대로 하자'입니다. 학교가 마음대로 고쳐 놓은 것을 다시 원상복귀 시키라는 말이죠."
한재호 지부장은 학교의 태도를 말하면서 '무대뽀', '거짓말', '독선', '관료주의'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 인사위원회 문제…"노사 신뢰가 무너졌다"

노조는 2000년 단협(전 집행부가 2001년 2월 체결)에서 임금 동결까지 감수하며 직원인사위원회 및 징계위원회 구성을 '학교 8인, 노조 2인'에서 7대 3으로 전환시켰다. 의결정족수가 '2/3이상 출석, 출석위원 3/4이상 찬성'인 만큼, 7대 3은 노조에게 좀더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99년 200명 가까이 희망퇴직, 명예퇴직 등으로 구조조정 될 때 인사위원회(교육조 문제)가 한몫 했습니다.

또 근무태도, 명령불복종 등 발의만 되면 학교측 의도대로 직원에 대한 징계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였으니… 결국 직원들이 눈치를 보게 되죠." 노조가 7대 3에 큰 비중을 뒀던 핵심적인 이유다. 그러나… 단체협상 기간 동안 학교는 또 다른 일을 발빠르게 진행하고 있었다.
'의결정족수 2/3이상 출석, 출석위원 1/2 찬성' 학교가 일방적으로 인사위·징계위 규정을 개정한 것이다. "7대 3이면 뭐 합니까? 5명만 찬성하면 게임 끝인데요." 노조의 절망과 흥분은 식을 줄 모른다. "학교는 단체협상 과정에서 임금포기라는 이득을 챙겼고 규정개정을 통해 '직원통제'까지 두 가지 모두를 얻은 셈이죠." 한 지부장은 단협체결(2001년 2월) 이후 우연히 규정이 바뀐 것을 알았다며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학교쪽은 "인사, 경영은 기본적으로 학교의 고유 권한"이라며 "노조의 파업은 명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임금인상 11.66% 대 4.16% 어떤 것이 진실?

"올해 이미 직원에 대한 전체 급여수준이 11.66% 인상됐습니다. 그러나 직원은 35.85% 인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정이 한창 진행 중인 지난달 19일 학교가 작성한 유인물의 일부분. 임금 외에 쟁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노조를 돈에 혈안이 된 집단으로 매도하고 싶은 겁니다. 학내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도록 만드는 거죠." 임금 문제는 지난 99년부터 뒤엉켜있어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 바닥에 깔려있다.

'2001년 임금은 99년 대비 5%이상 인상해 지급한다.' 2000년에 맺은 임금협상의 내용. "학교가 2001년 임금협상은 끝났다고 하더군요. 지난해 합의에 따라 이미 인상했다는 거죠." 한지부장은 이 문제도 논란이 많지만 더 중요한 핵심은 아무리 봐도 5%이상 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획실 자료, 명세표를 모두 갖다 놓고 계산해도 4.16%만 나올 뿐 학교가 말한 수치는 나오지 않았다. 11.66%, 4.16% 어떤 것이 진실일까? 결국, 지난달 24일 마지막 조정회의에서 노사 양쪽은 "4.16% 인상이 맞다"고 동의하게 된다.

"학교의 어이없는 행동은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올 2월 직원의 상급학교 진학(박사과정 및 일반·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 동안 학교를 다니고 있던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휴학계를 제출했다고 한다. "도저히 이해가 안돼요. 학교 총장이 자기개발을 하라고 공식적으로 말하면서 왜 직원들의 배울 권리를 일방적으로 막는지 답답합니다. 고려대는 봉건사회예요." 조합원들의 불만은 노동강도, 총무처장의 교섭태도, 무시 등 한숨과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 "여기서 밀리면 직원의 미래는 없다."

고려대는 12월11일부터 원서 접수를 받는 등 입시가 본격화된다. 조합원들의 마음도 썩 좋을 수만은 없다. 고려대는 결국 조합원들이 돌아가야 할 일터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파업이 학교 말대로 정말 명분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법과 규정으로 맺어진 제도들이 경영자들의 말 한마디에 뒤바뀌고 있는데요." 노조는 더 큰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도 학교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학교는 "노조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당면한 입시 등의 업무는 명예교수님들의 협조로 한치의 차질 없이 수행될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혀, 사태 해결이 불투명한 상태다. 여기에 학교가 보낸 업무복귀서로 조합원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물론 조합원들의 '언' 마음이 조금은 풀릴 만한 일도 있었다. "계약직 14명이 파업 기간 중 조합원으로 가입했습니다." 노조가 핵심쟁점 중 하나로 계약직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밀리면 직원의 미래는 없습니다. 계속 끌려갈 뿐이죠." "고려대는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학교라는 말만 빼면 이런 악덕사업주가 어디 있습니까?" 한 늙은 노동자의 말이 귓전에 계속 맴돈다. 아시아 5대 대학, 세계 100대 대학은 무엇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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