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또는 구금·보호시설의 업무수행과 관련해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과 합리적인 이유없이 차별대우를 받은 사람은 26일부터 서울 수송동 이마빌딩 501호에 자리잡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으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인권침해나 차별대우를 받은 모든 사람은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낼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진정하는 날부터 1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건 발생후 1년 이상 지났더라도 공소시효나 소멸시효가 남아있는 경우에는 진정할 수 있어 사실상 제한없이 진정할 수 있는 셈이지만 피해자가 명확해야 한다.

물론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당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이같은행위를 목격한 제3자도 진정할 수 있다.

인권위원회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인권의 사각지대였던 교도소 등 구금시설에서의 부당행위와 성차별을 포함한 각종 차별행위를 근절시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인권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인권위원회가 존재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경우 인권침해 행위는 물론 차별행위까지도 구제가 가능해 운영여하에 따라서는 인권보호에 관한 한 그 어느 나라보다 완벽한 제도를 구비했다고 볼 수 있다.

◇ 사회적 약자 및 소수보호 = 인권위의 출범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못내고 사회적 차별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장애인, 성적소수자, 아동, 노약자 등에게 의지할 곳이 생겼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서 국가나 국민들로부터 정당하게 대우를 받지 못하고 헌법에 보장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마저 유린당한 채 살아온 이들에게 쉼터가 생겼다는 것이다. 권리회복 구제절차가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드는 법정투쟁 대신 앞으로는 인권위를찾아가거나 전화 등을 통해 억울한 사정을 진정하면 의외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 국가공권력 견제 및 감시 = 인권위는 국회의 입법 및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제외한 국가기관과 지자체 또는 구금·보호시설의 인권침해 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해당기관에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어 자연스럽게 부당한 공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갖게 한다. 이 같은 기능은 인권침해의 사전적 예방기능으로 볼 수 있으며 운영여하에 따라서는 인권위가 헌법재판소 못지 않은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금시설을 갖고 있는 법무부와 국방부 및 890여곳에 이르는어린이, 장애인, 노인복지 및 외국인 보호시설을 관리하는 복지부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인권위가 방문조사권을 발동, 성역에 가까웠던 군 구금시설을 찾을 경우 획기적인 인권상황의 변화가 예상된다.

◇ 인권위 과제 = 가장 큰 문제는 법무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여성부, 복지부, 국방부 등의 업무와 중복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칫 운영과정에서 이들 기관과 기관간 충돌이 발생할 소지가 없지 않다. 인권위가 출범하면서도 완벽한 기구를 갖추지 못한 것은 사실 행정부에서 협조하지 않는 측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기관끼리 업무를 합리적으로 분담해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인권위 설치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온 법무부가 인권위는 보충적 제도일 뿐 기존 국가기관을 대체하거나 경합하는 기구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 일부 인권단체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수사중이거나 종결된 사건에 대한 인권위의 조사권을 배제한 것은 이 단체의 실질적인 힘을 뺀 것이라는 주장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의 출범은 이유없이 차별받고 고통받는 우리 사회의 소수를 위한 기구가 탄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적지 않다. 비록 완벽한 기구는 갖추지 못했지만 인권국가로 향하는 작은 발걸음을 뗐다는 데서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인권관계자들은 지난 4월30일 인권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 3년에 걸친 인권단체의 노력의 결실인 이 기구의 출범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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