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멕시코가 거대한 경제 실험의 장이 되고 있다. 이 나라가 새삼스레 관심을 끄는 것은 `경제 통합'이란 화두와 무관하지 않다.

올 봄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경제계에는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과연 역내 경제통합이 선택 또는 필연의 문제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이 점에서 멕시코는 우리에게 좋은 거울이 될 수 있는 나라임에 분명했다. "300년이 넘는 식민지 경험, 지금도 미국의 절대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멕시코인들이 하루 일당 2-3달러의 일자리가 없어 목숨을 건 채 미국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주진엽 멕시코 대사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국 대사관이 있는 멕시코 한 부호촌에만 해도 세계 10대 부자중 3명이 살고 있다한다. 한마디로 극심한 빈부격차는 오늘날 멕시코의 현실을 대변한다.

주대사는 "멕시코의 신진 경제관료들은 한국의 경제관료가 초창기 경제발전과정에서 겪지 않아도 됐을 기득권층의 저항과 혼혈 문화라는 장벽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유무역협정은 이런 기득권측의 폐쇠 경제를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겠냐"고 말한다.

94년말 페소화의 대폭락으로 경제 대붕괴를 목전에 앞둔 시점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성사된 것도 멕시코에게 FTA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한덕수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문제를 두고 마치 우리가 원치 않으면 그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처럼 여기고 전혀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국익에 커다란 해가 될 것입니다"

멕시코의 대표적 개방주의자 에르미니오 블란꼬 멕시코 통상산업개발부 장관 역시 "자유무역협정은 많은 맥시코인에게 일자리를 가져다 주었다"는 데서 경제통합의 경제·정치적 당위성을 역설한다.

NAFTA 교섭대표로 활약하기도 한 그는 "80년대 경제붕괴 후 극도로 악화된 실업 문제를 풀수 있는 길은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외국투자의 유치와 수출 진흥뿐이었다"면서 "NAFTA이후 매년 100만명 정도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고 설명한다.

덕분에 95년 최고 8%를 기록한 실업률이 지난해 3%이하로 낮아졌다. 93년 49억달러에 불과한 외국인투자 규모도 지난 99년에는 116억달러까지 늘어났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개방정책이 갖는 일정한 한계도 부인할 수는 없다. 압축과 불균형 성장이 의례히 초래하는 부작용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 우남(UNAM)대학의 빅토르 고디네스 교수(경제학)는 심지어"NAFTA등 멕시코의 개방정책이 대미 의존적인 산업구조를 야기시켰을 뿐아니라 고용창출에도 별다른 효과를 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멕시코시티 중심을 가로지르는 레포르마가(개혁로)를 걸으며 마주치는 인디오와 메스티조(백인과 원주민 인디오의 혼혈로 멕시코인구의 55%이상을 차지)의 고단한 삶속에 고디네즈 교수의 비판에서처럼 개 방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그런 자유가 없음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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