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중 다쳐도 산재보험 적용 못받아"…"불이익 당해도 계약해지 될까 항의못해"



한팀당 11명, 모두 22명이 어우러져 상대방 골문에 공을 넣기 위해 운동장을 뛰어 다니는 축구경기. 이 축구경기에서 정작 공은 한번도 차보지 못하지만 선수들보다 더 바쁘게 운동장을 뛰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심판과 부심들이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면 승자에 대한 갈채와 패자에 대한 위로는 선수들 몫일 뿐 심판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심판들은 패배한 팀의 팬과 관계자들로부터 쏟아지는 원성을 받으며 경기장을 떠날 뿐이다.

■ "이기면 선수들 잘한 거고, 지면 심판 잘못한 거"

'파울인데 왜 안 부는 거야', '저건 업사이드야', '분명 핸드링인데…' 누구나 한번쯤은 축구경기를 지켜보다 심판을 원망해 봤을 것이다. 예민한 승부거나 경기가 과열될수록 심판에 대한 원망에는 욕설이 섞이기도 하고 때로는 관중석에서 물병이 날아들기도 한다. 그럴수록 심판들의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휘슬소리에는 힘이 빠진다. 한마디로 만만한 게 심판이다.

더구나 프로축구연맹마저 판정시비가 있을 때마다 심판보호 보다는 심판들에게 모든 짐을 지워 여론 무마용 징계를 해 왔다. 그러나 정작 경기 중 부상을 당해도 제대로 치료비 보상을 받지 못하고, 경기 후에는 판정에 불만을 품은 팬들과 구단의 항의에 따라 고용불안을 느껴야 하는 심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간과돼 왔다. 더욱이 문제는 판정시비와 관련 심판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통로가 배제돼 있어 연맹 이사회를 움직이는 구단들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돼 왔다.

이에 대해 심판들은 지난 7월5일 근본적인 문제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지난 6월24일 대전-수원경기 때 심판이 레드카드를 잘못 꺼내 대전 서포터들의 그라운드 난입사태를 유발한 왕종국 심판의 사퇴서 제출이 계기가 됐다. 당시 대전 서포터들은 경기장 곳곳에 왕심판을 포함한 심판 3명의 지명수배 전단을 뿌리기까지 했다.

심판 상조회는 7월5일 △ 왕종국 심판 사직 철회 △ 심판상조회 임원 경기배정금지 방침 철회 △ 심판급여착취 중단 △ 은퇴 심판 퇴직금 지급 △ 심판 안전보호 대책 강구 등 7가지 요구조건을 연맹에 제시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왕종국 심판 사직 철회'이외에는 들어줄 수 없다는 것. 당시 축구심판노조 원용성 사무국장은 "면담자리에서 '당신들이 노조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말한다. 결국 심판들은 그날 오후 총회를 갖고 노조결성을 결의했다.

"노조에 대해 심판들이 모두 생소해 했어요. 대부분 선수출신이다 보니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죠. 그러나 진짜 이유는 (노조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껴도 찍히면 재계약에서 빠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거죠."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고 심판 총 25명 중 16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이달 6일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 10일 설립필증을 교부 받았다.

■ 임금만큼이나 절박한 4대 보험

심판들은 1년 단위로 계약한다. 이들은 월 기본급으로 주심이 140만원, 부심이 120만원을 받는다. 거기에 주심은 경기당 25만원, 부심과 대기심은 경기당 15만원씩 수당을 받는다. 노조는 "경력이 20년이 되도 연봉이 3천만원이 안된다"고 말한다. 더구나 98년 IMF 이후 월 5만원씩을 반납해 왔으며 이후 연맹 사정이 나아지면 상여금 형태로 보상하겠다던 약속은 아직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판들은 임금보다 더 절박한 요구가 있다.

4대 보험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다 보니 축구경기 중 부상을 당해도 산재처리가 안된다. 김태광 심판의 경우 경기 중 발목을 접질려 깁스를 해야 했지만 연맹으로부터 치료비조차 받지 못했다고 노조는 밝혔다. 특히 운동장 사정이 좋지 않을 경우 부상위험은 더 높고 서포터들의 흥분도 심판들에게는 위협이 되고 있다. 또한 내년부터 전면적으로 '토토복권'이 실시될 경우 응원양상은 더욱 과격해 질 게 뻔하지만 심판 보호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뿐만이 아니다. 심판들은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1년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연맹에서 맘에 안들면 다음 계약할 때 아무 해명도 없이 명단에서 빠집니다. 아마추어 때부터 10년 이상씩 심판을 본 프로축구 심판 대부분이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입니다. 계약이 해지되면 갈 데가 없습니다. 실직자가 되는 거죠."

이런 현실에 축구심판들은 제대로 항변할 수가 없다. 협회의 행정이 구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구단이 판정시비를 제기하면 경기배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맹 이사들이 구단관계자들이다 보니 이사회가 구단의 입장만 대변하게 됩니다. 이사회에 사회인들이나 경기인들이 포함되지 않고는 구단이 전권을 휘두르는 축구행정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심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심판들은 또 덧붙인다. "소신 것 판정하라고 하면서 판정시비가 일면 소신은 무시되고 구단의 요구만 일방통행됩니다." 따라서 경기 이후에 심판들이 판정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해 심판들의 입장을 적극 개진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는 게 심판들의 바람이다.

게다가 심판들을 위한 샤워시설도 없는 구장들도 있다. "한 경기 심판을 보고나면 3∼4키로가 빠집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서도 씻지도 못하고 경기장을 벗어나야 합니다." "구장에 심판실이 옮겨줘도 알려주지 않을 때"도 있다며 심판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 축구선진국이 되기위해선 축구문화도 바뀌어야

"우리 심판들은 아시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나 100% 완전할 수는 없으니 실수 할 수도 있지만 심판도 하나의 경기흐름으로 봐줬으면 합니다."

관중석과 운동장이 가까운 전용구장에서 관중이 던진 음식물 쓰레기에 맞을 뻔했다는 원용성 축구심판노조 사무국장은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우리의 축구문화를 꼬집었다. "심판들이 파울여부를 판단하는데 0.3초가 걸립니다. 짧은 시간에 판단해야 하니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잘못된 부분을 시인하고 분석해 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원 사무국장은 특히 지난 8월1일 수원과 포항의 경기에서 신홍기 선수의 결승골을 업사이드가 아니라고 판정했으나 관중들과 구단관계자들로부터 업사이드라는 항의를 들었다. 경기 끝나고 비디오를 검토해 봐도 원 사무국장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같이 비디오를 본 심판들도 업사이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구단의 압력으로 5경기 배정 중지의 징계를 받았다.

"심판은 운동장에 없으면 죽은 생명입니다.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랑 똑같아요"

심판들에게는 유럽수준의 경기수준을 요구하지만 정작 준비가 안된 건 장기적인 안목 없이 단기적인 승패에만 집착하는 구단, 선수, 관람객들이 아닐까? 당장 자기팀에게 불리한 판정이라고 생각하면 심판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보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한 선진국 수준의 축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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