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4일자 수요초대석 박태주씨의 '영광된 고립이 빚어낸 소외의 그림자'(내용 보기)에 대한 반박기고가 본지로 보내져왔다. 수요초대석의 내용이 노사정위원회 참여문제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것을 강조한 데 비해,
이번 반박기고를 보낸 필자는 노사정위는 노동자를 죽이기 위한 조정기구 에 불과한 만큼 재론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명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더 이상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판단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현실로 보았을 때, 우리 노동자들의 순수한 대화요구조차 묵살한 것은 언제나 정권과 자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과 자본은 끊임없이 노사정위원회라는 틀만을 고집하고, 책임도지지 못하면서 노사정위원회만이 유일한 협의 창구가 될 수 있다고 선전을 하면서, 결국은 대화조차 회피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노사정 간의 진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그러한지 몇 가지 조건과 상황을 통해 판단해보자.

노사정위원회가 성립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바로 정권의 중립성이다. 그러나 이 땅의 정권들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지금의 김대중 정권은 어떤가? 노사 관계에 있어, 정권의 중립성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아니 오히려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자를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죽이기위해 골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땅의 정권 아닌가? 자본주의 정권을 '총자본'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현실에서 이미 정권이 중립적이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를 위한 노사정위원회는 애초 성립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울산에서부터 부평에 이르기까지 우리 노동자들이 바로 김대중 정권에 의해 얼마만큼 두들겨 맞았고 피를 흘렸는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김대중 정권이 이야기하는 것은 '노사정위원회에 들어오면, 두들겨 패는걸 그만하겠다'는 의미 이상을 넘지 못한다.

두 번째의 조건은 노사정 3자간의 힘의 관계가 동등하냐는 판단을 해야 한다. 힘의 관계를 따질 때는 단순히 회의기구에서의 쪽수와 결정권의 문제를 넘어, 현실에서의 힘의 관계에 대한 동등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정권은 제외시키더라도, 노사간의 관계에서만 봐도 여전히 열세에 직면해 있다. 노동현장은 직종과 직업을 불문하고 구조조정과 현장통제 속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단위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투쟁을 해야하는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자본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아 와야 하는 것만 있지, 자본에게 더 이상 내줄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힘의 동등성이 보장되지 않은 속에서 노사정위원회라는 허울은 또 다른 빼앗김을 의미할 뿐이다.

세 번째로 노사정위원회라는 협의기구가 성립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는 지를 따져보자. 현행법에는 파업권이 보장돼있다. 이 또한 많은 제약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노사가 단체교섭을 하다가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경우 노동조합은 파업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투쟁을 하며, 자본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는 불이행에 대한 어떤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조차도 갖춰져 있지 않다. 이러할 때 노사정위에서 노동계는 사와 정의 협의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노사협조주의라는 말이 민주노조운동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다. 서구의 조류가 물건너와 그냥 모방하는 꼴이 되었던, 자생적으로 발생을 했던, 민주노조운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좋지 못한 방향으로. 필자가 보아온 바로는 말이 좋아 '노사협조'지 구조조정 등 자본의 정책에 협조 혹은 동조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제는 조금 더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 지금, 정권과 자본의 구조조정을 박 살내기 위해 총력투쟁을 벌여야 하는 지금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판단 여부를 가지고 더 이상 논란을 펴지 말자. 투쟁을 돌파하지 않으면 여전히 이 땅은 노동자의 지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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