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초읽기 들어가…"합병이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는데…"




금융노조 국민은행지부(위원장 김병환)는 26일부터 합병 전날까지 매일 저녁 명동 본점에서 결의대회를 한 후 청와대 앞 집회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경찰 4개 중대는 26일 오후부터 명동 본점을 둘러싸는 등 국민은행 주변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집회 예정시간이었던 저녁 7시가 지나도록 모인 조합원은 20명을 채 넘기지 못했다. 결국 저녁 8시가 넘어 집회는 시작됐지만, 모인 인원은 겨우 10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국민은행 조합원들이 주택은행 조합원들과 함께 '국민·주택 강제합병 반대'를 내걸고 그 추운 겨울에 일산연수원에 모여 7일간의 파업을 벌인지도 어언 1년. 국민은행노조는 왜 합병을 6일 앞두고 이런 강경한 투쟁일정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까. 현장의 조합원들은 현재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일까.

■ 무심한 여론 속에서 진행되는 합병반대투쟁

26일 낮 명동의 국민은행 본점 앞을 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민·주택은행 합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이미 국민은행노조의 투쟁에도 현장의 불안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속에서도 국민은행 노조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국민은행 행원들이 합병에 반대해 유니폼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고 근무한지도 벌써 몇 달째. 그러나 사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듯 했다.

26일 저녁 집회시간이 지연되며 모인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자기가 속한 지점의 분위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한 분회장이 옆에 앉은 사람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오늘 집회 오는걸 투표했는데, 대부분 오고 싶지만 다른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고, 입사한지 얼마 안되는 젊은 사람 몇명은 노조에도 관심없고 집회도 안올거라고 하고…온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고"

은행원들이 행동에 나서기 어려운 점중의 하나는 몇십명 단위로 전국 지점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합병을 며칠 안남긴 상황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그러나 국민은행 조합원들 사이에 우량은행인 국민은행을 흡수합병하듯 합병하는 정책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해있다고 한다. 서울지역 지점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씨(32세)는 "주택은행 통장만 봐도 화가 날 정도다"고 입을 열었다. 김씨는 "합병에 있어 조직구성원인 우리들에게 그간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거친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행장이 주택은행장으로 선임됐으면, 다른 사안에 있어서는 국민은행쪽을 배려하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고 말했다.

■ "주택은행 통장만 봐도 화가 날 정도다"

국민은행 조합원들이 합병을 반대하는 것은 단지 주택은행 출신인 김정태 행장이 통합은행장으로 선임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은행 조합원들의 기억속에 김정태 행장은 주택은행 행장이라는데 앞서 그간 팀제운영, 성과급 대폭 도입 등 은행에 자리잡고 있던 조직문화를 뒤흔들며 노동의 유연화와 구조조정을 앞장서서 실천해온 사람으로 각인돼 있는데다, 김정태 행장의 통합결정 이후 행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국민·주택은행의 인원 비율이 9:7이며, 자산규모로 볼 때 최대 8:2까지 분석되고 있지만, 합병추진위원회의 인적비율부터 시작해 합병은행 팀장급 인선까지 인적비율은 반반이 안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더구나 합병은행의 본점이 여의도 주택은행 본점으로 결정되며, 국민은행 본점 직원들은 이사까지 가야할 형편이 된 것이다. 한 노조간부는 "내가 아는 조합원들중 대부분은 우리사주 주식을 다 판 것으로 안다. 합병 이후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왜 주식을 팔았겠냐"며 합병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안한 심리를 전했다.

현장의 불만이 높은데도 조합원들이 집회에 모이지 않는냐는 질문에 유아무개 분회장(36세)은 이렇게 답했다. "조합원들이 마음은 있는데, 몸은 안움직이는 이유는 우선 은행원들이 지난해 파업외에 투쟁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데다, 지난해 그렇게 격렬했던 파업도 실패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유분회장은 "그럼에도 노조의 이같은 투쟁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독과점에 따른 문제점이나 조직갈등 등 여전히 우려되는 문제가 있는데도 합병이 강행되는 상황에서 합병철회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합병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 쟁의행위에는 찬성, 쟁의참여는 '주저'하는 조합원들

지점에서 혼자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는 다른 분회장은 더욱 강한 노조의 투쟁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병환 위원장이 '강한 투쟁으로 합병철회'를 약속하고 당선됐으면서 조합원들을 조직화하는데 미온적이었다고 비판했다. 노조 홈페이지에는 이런 강한 요구가 더 많이 올라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주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도 82%가 찬성에 표를 던졌다.

한편 집회가 예정됐던 26일 저녁 휑한 명동 본점에서 노조 간부들은 공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노조 관계자들은 "지금 시점에선 조합원들이 나서기보단 노조간부들만 세게 나서서 '희생'해주길 원하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일부 노조 간부들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 합병 이후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더욱 냉각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합병철회를 주장하며 김병환 집행부가 출범한지 한달. 그러나 이미 합병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에서 아직 교섭테이블조차 변변히 마련되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손놓고 아무 것도 안할 수는 없는 일. 노조 윤상옥 홍보부장은 "그래도 파업을 경험했던 조합원들입니다. 어떤 계기가 생긴다면 지금이라도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믿어요"라고 말했다.

한 노조 간부는 "몸부대끼며 함께 파업했던 주택은행쪽 사람들과 합병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이 벌어질 경우 그것도 합병의 안타까운 모습이죠"라고 걱정하며 합병이후 노조의 투쟁계획을 세우는데 있어 고민을 털어놨다.

국민은행노조는 26일 집회 이후 계획돼 있던 집회 일정을 취소하고, 합병전날인 31일 '파업전야투쟁'의 이름으로 집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합병에 반대하면서도 나서기 힘들어하는 조합원들과 그속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노조 집행부. 그동안 우려해온 합병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이 어떤 행보를 선택할지 지켜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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