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의 기업구조조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은 같은 규모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미국보다 2배나 많은 부동산과 설비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생산활동에 쓰지 않는 자산을 지나치게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최근 경기상승세가 급속히 둔화되고 있는 점을 들어, 이른 시일 안에 과다보유 자산을 처분하는 등의 기업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실물부문의 수익성이 악화돼 기업 자금난과 금융시장 불안이 다시 초래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효율성 미국의 절반=최근 한국은행이 2046개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토지, 건물, 기계 등의 유형자산이 생산활동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고있는지를 나타내는 유형자산회전율(매출액을 유형자산으로 나눈 것)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유형자산회전율은 1.85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 기업은 3.61, 일본 기업은 3.16으로 우리나라 기업보다 각각 2배,1.7배가 많았다.

이는 같은 매출액을 올리기 위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 기업보다 2배나 많은 자산을 사용하고 있음을 뜻한다.

지난 2년간 기업들은 인원감축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데는적극적이었지만, 정작 자산의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데는 소홀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에 따라 총자산 가운데 유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99년 말 44%로 미국(28%) 일본(32%)보다 훨씬 높다.

◇ 대기업이 더 심각=비효율은 대기업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중소기업의 유형자산회전율은 지난해 말 3.13으로 선진국 기업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으나, 대기업의 자산회전율은 1.51에 불과했다.

한은 기업경영분석팀 안형순 조사역은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97년과 비교할 경우 지난 2년 사이 중소기업의 유형자산회전율은 5% 가량 떨어지는 데 그친 반면, 대기업은 무려 22%나 떨어졌다”며 “이는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약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런 비효율적인 자산운용으로 인해 지난해 두자릿수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6.6%에 그친 것으로 한은은 분석했다.

반면 중소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10.8%에 이르렀다.

대기업의 매출액 증가세가 중소기업에 뒤떨어진 것은 90년대 들어 처음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분석을 통해 제조업체들이 외환위기 이후 벌여온 구조조정 노력이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데 대해 정부당국자들도 당혹해 하고 있다”며, “앞으로 대기업에 대한 기업구조조정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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